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이날 오전 그리어 대표와 약 1시간 동안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정 수석부회장은 면담 직후 "그리어 대표와 조선 산업에 대해 어떻게 같이 협력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나눴다"며 "앞으로 여러 가지 기회를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회담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HD현대중공업과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의 협력 사례를 소개하면서 공동 기술 개발, 선박 건조 협력, 기술 인력 양성 등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미국 내 중국산 항만 크레인의 독점적 공급 문제와 관련해 HD현대 계열사인 HD현대삼호의 크레인 제조 역량을 소개하며 공급망 확대를 위한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제안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HD현대는 미국의 조선 산업 재건 의지와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이를 위한 모든 준비를 한 만큼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화오션의 김희철 대표도 이날 오후 그리어 대표와 만날 예정이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참석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8월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호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수주해 성공적으로 인도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이번 면담에서도 양국 사업 확대에 대한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회동은 양국 간 조선업 협력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한국과의 함정 MRO 사업 협력 의지를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건조 능력을 알고 있으며, 보수와 수리, 정비 분야도 한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선 기술력이 취약한 미국은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미국에서는 높은 생산비용과 인건비 문제로 사실상 쇠퇴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은 함정 MRO 물량 일부를 해외로 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 정부 관계자와 국내 조선업체 경영진 간 교류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이 방한해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면담하고 HD현대 울산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방문했으며, 정 수석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만나 양국 간 협업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한편, 이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주가는 이번 면담 소식에 상승세를 보였다. HD현대중공업은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 거래일 대비 1.44% 상승한 42만2500원에 거래됐으며, 장중 43만1500원(3.6%)까지 오르기도 했다. 한화오션 역시 1.137% 오른 8만1600원에 거래되며, 장중 8만2900원(2.98%)까지 상승했다.
이번 한·미 고위급 통상 실무협의에서 K-조선이 관세 협상의 주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한국 조선사가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필수 파트너'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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