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c-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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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이익 환원 퇴직연금공단, '선의'의 탈을 쓴 위험한 도박
“선한 의도로 포장된 길이 지옥으로 이어진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현재 국회 일각에서 추진 중인 ‘공공이익 환원 퇴직연금공단’ 설립 주장을 마주할 때, 이 오랜 격언만큼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말은 없을 것이다. 공공이익 환원 퇴직연금공단 설립의 핵심 내용인 "근로자가 모은 자산을 공공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운용해 공공의 이익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들으면 국민의 노후를 걱정하는 숭고한 선의(善意)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수사의 포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제도의 법적 본질을 왜곡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도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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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 신중한 논의 필요하다
최근 국회와 정부, 여야를 막론하고 추진되는 상법 개정안, 특히 자사주 소각의무화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주주환원’ ‘시장 신뢰 제고’란 명분 아래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이 일정 기간 내 반드시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이 제도는 과연 우리 자본시장에 순기능만을 기대해도 될 일인가.삼성전자는 지난해 10조원의 자사주를 사들이고, 그중 3조원 어치를 과감히 소각했다. SK이노베이션(8,000억원), 포스코(7,500억원), KT&G(1조2,000억원)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이 이어졌다. 이런 소각 발표를 기점으로 상당수 기업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2~5% 상승했다. 소각이 ‘주주 환원’이라는 시장기대에 부응하면서 신뢰와 투자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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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의 저주
슬하에 초등학생 두 아들이 있다. 세 살 터울인데, 둘째는 성격이 세서 형에게 자주 덤빈다. 첫째는 어질고 너그러워서 대체로 웃으며 넘어간다.어느 날 집에 콜라 한 병을 사 두었는데, 둘이서 번갈아 마시겠다며 치열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한 모금 마시는 동안에도 “이제 내 차례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별것 아닌 일로 서로 죽일 기세라니 웃기면서도 안쓰러웠다. 이 싸움은 내가 이렇게 말할 때까지 이어졌다. “돈 줄 테니 같이 가서 콜라 하나 더 사 와라.” 거짓말처럼 둘은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아내는 기아대책이라는 NGO에서 일한다. 이 단체의 비전은 이름 그대로 지구촌 기아 퇴치다. 그런데 기술이 이렇게 발전한 시대에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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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연금 선택의 갈래길, 소유권이냐 승계권이냐
주택연금을 고민하는 많은 어르신들이 첫 번째로 마주하는 선택이 바로 담보 제공 방식이다. 같은 주택연금이라도 근저당 방식과 신탁 방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소유권 유지 여부부터 배우자 승계, 심지어 임대 운용까지 판이하게 달라진다. 근저당 방식은 말 그대로 은행 대출과 비슷한 구조다. 집 소유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근저당권만 설정해두는 방식이다. 소유권을 지키고 싶어하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인지 대부분의 가입자가 이 방식을 선택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숨어 있다.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배우자에게 연금을 승계하려면 자녀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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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은 정말 일자리를 뺏을까
필자는 펀드 매니저다. 그중에서도 컴퓨터 프로그램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산을 관리하는 퀀트 펀드 매니저로 분류된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개발해 왔고, 지금은 관련 강의까지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자가 전해 온 메시지의 변화는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2020년 무렵까지만 해도, 필자는 강의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체하려면 아직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당시에는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출시됐던 인공지능 서비스들의 성능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번역기를 써도 정확한 결과를 얻기 어려웠고, 예술적 창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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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수익률, 상위 1%들의 비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퇴직연금 투자백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이 431조7천억원으로 사상 최초로 400조원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3년 연속 13% 수준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제도 도입 이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주목할 점은 펀드, 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금액이 75조2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53%나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만 머물러 있던 퇴직연금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시사한다.수익률 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 연간 수익률이 4.77%에 이른 것이다. 최근 5년 평균 2.86%, 10년 평균 2.31%를 크게 상회했다. 특히 실적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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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연금 전면 개편 예고...'하우스 푸어' 시니어들의 새 희망
고령화 사회를 맞아 주택연금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최근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주택연금 제도의 전면 개편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은퇴를 앞둔 이들의 관심이 뜨겁다.지금까지 주택연금은 보증료 부담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감사원도 초기 보증료가 높아 공사에 과도한 순이익이 발생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번 개편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다.가장 주목할 변화는 월 수령액 증가 가능성이다. 2024년 감사원 기관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주택가격 4.15억원, 72세 기준으로 월 약 134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개편 후에는 월 약 140만원을 수령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증가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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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백만장자의 두 얼굴
미국에서 '연금 백만장자'라는 신조어가 화제다. 401(k) 계좌에만 100만 달러 이상을 쌓은 근로자가 90만 명에 달한다. 13억 원의 노후 자산을 개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언뜻 보면 경이로운 성취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숫자 뒤에는 미국 연금제도 150년 역사의 명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DB에서 DC로, 150년 실험의 결과미국 연금제도는 1875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시작됐다. 당시는 확정급여형(DB) 중심이었다. 회사가 근로자의 노후를 평생 책임지는 구조였다. 이 연금은 2차 대전 후 중산층 성장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그러나 1970년대 고령화와 경제 변화가 몰아치면서 기업들은 연금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해답은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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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7년차, "나는 왜 아직도 불안할까?"
매출이 완전히 끊겨 더 이상 살아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던 창업 4년 차였다. 사무실 지원도 중단되면서 팀원 모두 재택근무로 전환됐다. 사실상 '근무'라는 말조차 사치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폐업을 기다리는 상황에 더 가까웠다.하루하루는 지옥 같았다. 아침 일찍 집 앞 커피숍으로 나가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다 돌아오기를 4개월 넘게 반복했다. 이 시간이 지속될수록, "나는 매출을 낼 수 없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괴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그때 처음으로 진짜 느꼈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동네 편의점에 원서를 넣었지만 나이가 많고, 고스펙이라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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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조 퇴직연금...안도걸 의원 개정안이 예고하는 지각변동
한국 퇴직연금 시장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431조 7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잠자는 거인'으로 불리던 퇴직연금이 마침내 깨어날 신호탄이 터진 것이다.퇴직연금 총적립금은 전년 대비 49조 3천억원(12.9%) 증가하며 3년 연속 13% 수준의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자금은 정작 가입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가상승률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저조한 수익률과 가입자의 무관심, 그리고 각종 규제에 안주하며 투자성과 개선에 소홀했던 퇴직연금사업자들의 안일한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였다.그런데 최근 안도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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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세대 갈등의 뇌관인가 상생의 열쇠인가
2025년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를 넘어섰고, 2040년에는 그 비중이 34%를 넘어설 전망이다. 동시에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대에 머물고, 노년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인 40%를 기록하고 있다. 연금기금은 2055년 고갈이 예고된 상황에서 정년연장 논의가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다.하지만 정년연장은 단순한 해법이 아니다. 생계와 재정, 고용시장이 얽힌 복잡한 사회적 도전이자, 세대 간 갈등을 부를 수 있는 뇌관이기도 하다.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은 참담하다. 법적으로는 60세까지 일할 수 있지만,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실제 기업에서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6세에 불과하다. 퇴직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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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개혁의 새로운 방향, "전문운용사 설립안에 주목하는 이유"
퇴직연금 개혁의 핵심인 기금형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안도걸 의원이 최근 발의한 '퇴직연금기금 전문운용사' 설립 법안이 그 중심에 있다. 이 법안은 기존의 수탁법인 설립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며, 퇴직연금 개혁의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그동안 기금형 제도의 핵심으로 논의되어온 수탁법인 설립 방식은 노사 동수로 구성된 법인이 기금을 운용하는 구조였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한계를 노출했다.수탁법인 방식은 몇몇 공적 기관이 기금을 일괄 운용하는 구조로, 가입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시장 경쟁 원리가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컸다. 운용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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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내 집이 연금이 되는 마법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길어진 수명만큼 늘어난 노후 생활비는 많은 이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평생 모은 돈으로 과연 30~40년의 노후를 버틸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말 그대로 내 집이 연금이 되는 제도다. 평생 살던 집을 팔지 않고도 그 집을 담보로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집은 그대로 두고 살면서 동시에 생활비까지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해법인 셈이다.55세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노후 설계주택연금 가입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다. 부부 중 한 명만 55세 이상이면 되고, 공시가격 12억원 이하의 주택이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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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개혁, 순서가 바뀌었다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뉴스가 되었다. 물가상승률도 따라잡지 못하는 적립금으로는 안정된 노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정부는 '민간기금형 도입'이라는 대수술을 예고했다. 정부 개혁안의 핵심은 투자 대상 확대다. 기금형 제도를 통해 벤처, 부동산, 사모펀드 등 다양한 대체투자를 허용하면 수익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이 주장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았던 이유가 바로 '지나치게 경직된 투자 규제' 때문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현행 퇴직연금, 특히 DC형과 IRP는 위험자산 투자 한도 70%, 투자 가능 상품 열거방식 등 수많은 족쇄에 묶여 있다.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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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연금①] "100세 시대, 내 집이 연금을 준다"
"집은 있는데 돈이 없다"는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주택 소유자가 자신의 집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또는 일정 기간 동안 매달 연금처럼 생활비를 받는 제도다. 가장 큰 장점은 집을 팔지 않고도 그 집에 계속 살면서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주택연금 가입 조건은 그러나,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55세 이상이고, 공시가격 12억원(실제 거래가격으로는 대략 17억원 전후) 이하의 주택이나 주거용 오피스텔을 소유하고 있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특히 주목할 점은 다주택 소유자도 가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러 채 집을 가지고 있더라도 합산 가격이 12억원 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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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제도 개혁을 위한 세 가지 실현 가능한 대안
430조원.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현재 규모다. 2005년 제도 도입 후 불과 20년 만에 이룬 놀라운 성장이다. 하지만 숫자 뒤에 숨은 민낯은 초라하다. 연평균 수익률은 고작 1~2%에 머물고, 적립금의 80% 이상이 원리금보장상품에만 몰려 있다. 말 그대로 '잠자는 연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최근 국민연금공단의 퇴직연금 시장 진출과 획일적 기금형 제도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거대 공공기관이 시장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민간의 자율성과 경쟁을 통한 해법이 더 바람직하다.첫 번째 대안은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에 한정해 선택적으로 기금형을 도입하는 것이다. DB형은 기업이 운용 책임을 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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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협회, "1300만 가입자 편에 서야 산다"
고용노동부가 올여름 '퇴직연금협회' 설립 논의를 재개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적립금 43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이 명실상부 국민 노후보장의 핵심 수단이 된 만큼, 협회 설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14년 전인 2011년에도 같은 논의가 있었지만 금융업권 간 이해관계와 당국의 소극적 태도로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새 협회가 특정 퇴직연금사업자들의 이익 대변 기구가 아닌, 1300만 가입자를 위한 진정한 공적 기구로 거듭나려면 '가입자 중심의 독립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기둥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새 협회는 명확한 역할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첫째, 은행·증권·보험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흩어진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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