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두려워한 작가들은 박쥐처럼 동굴 속에 갇혀 누군가를 탓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구명본 작가의 의식은 손주를 안아줄 나이 임에도 청년이다. 동굴 속 박쥐로 살고 싶지 않아 힘껏 밖으로 나왔다. 부산 작업실 방문 때마다 실험과 작업 방향에 대한 진정성은 자칫 그동안 추구하던 것을 망가뜨릴 수 있었음에도 두려움이 없는 청년이다.
에콜 드 프랑스의 ‘황태자’로 불려지는 니콜라 드 스탈은 독일에서보다 프랑스, 미국, 영국 그리고 스위스에서 더 유명하다. 그의 작업 일기에 ‘나는 나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언제나 다르게 미리 주어진 미학 없이 작업해야 한다.’ 드 스탈은 ‘형태들을 색채의 유희 속에 풀어놓으면서 오히려 평면과 공간의 깊이를 명확히 하려 했다. 그에게 사물은 공간 자체보다 덜 중요해 보였다. 또 스탈은 사물들보다 공간이 더욱 분명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얼마 전까지 붓의 중심으로 살았던 작가들은 무조건 땅굴 파듯 그리는 것이 원칙이라 생각했던 동굴 속에 갇힌 작가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구명본 작가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작품에 작은 이탈에 대한 조짐이 보였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붓을 던졌다. 작가가 붓을 던진다는 것은 꺽는 것과 다르다. 현대미술에 대한 혜안이 열리고 있다는 내적 지진으로 오랜 전통과 관습이 깨지고 있었다. 자칫 아쉬움이 클 텐데 하는 감상에 주저하지 않고 치과에서 사용하는 스케링 머신으로 소나무와 까치를 발굴했다.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에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숨어 있는 유물을 조심스럽게 발굴하듯 캔버스에서 종일 땅을 파듯 긁어내면서 유물의 지경을 확장했다.
오래전 그의 작업이 얼마나 교과서적인가. 그 교과서적인 관념을 스스로 허물고 새롭게 완성되어 가는 또 한번 시도하였다. 캔버스에 과감히 물감을 투척했다. 어느 작품에서는 버릴 수 없는 심장 같은 항아리라는 동굴을 시나브로 빠져나왔다.
로버트 야콥센 (Robert Jocobsen)은 ‘내가 무엇을 작업하든지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릴 때에도, 나는 가장 단순한 도구를 가지고 가능한 한 가까이 대상에 접근하고자 노력한다. 나는 이 재료에 정신을 불어 넣으려고 시도하였다. 나의 작업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변증법에서 발생한다.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서 해야 할 일과 그를 위한 영감은 내가 볼 수 없는 것으로 부터 나온다. 작품들은 새로워야 한다. 나는 나의 형상들을 나의 추상적 형식들과 같은 방식으로 고안하였다.’
구명본 작품에 대한 평가는 조금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다시 강을 건네는 실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용기를 가지고 작업을 선보인 것 자체가 귀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구명본 전시는 14일까지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금보성.백석대교수.금보성아트센터 관장
이수환 글로벌에픽 기자 lsh@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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