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48회 대한상의 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제조업은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뿐만 아니라 노화가 되고 있다"며 "AI로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지 못하면 10년 뒤 대부분의 기업이 퇴출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추격에서 추월로
최 회장의 위기 진단은 글로벌 경쟁 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기반한다. 그는 "중국 제조업의 실력이 점점 좋아지다 보니, 중국으로 가는 수출은 줄었고 제3국에서는 중국과 경쟁하게 됐다"며 "석유화학 등은 이제 중동이나 인도나 중국의 경쟁 상대가 되고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는 중국이 단순히 한국을 '추격'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추월'했음을 의미한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5%에 육박하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 회장은 "10년 전부터 상당히 많은 사람이 워닝(경고)을 했고 새로운 산업 정책과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했지만 '잘 되고 돈 잘 버는데 뭐'라는 개념이 존재했다"며 안일한 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여태까지 잘했으니까 앞으로도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너무 근거 없는 낙관론이 많다"고도 지적했다.
AI가 유일한 희망…중국이 더 빠르다
최 회장이 제시한 해답은 AI 중심의 제조업 혁신이다. 그는 "우리의 희망은 AI에 거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우려가 있다. "AI마저도 중국이 쫓아오고 어플라이(적용)하는 속도가 저희보다 더 빠르지만, 아직 초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빨리 캐치업해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손잡아야 살 길
주목할 점은 최 회장이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데이터 사이즈(규모)가 작다"며 "AI를 잘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는 손을 잡고 서로 데이터를 교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혼자서는 AI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APEC을 통한 돌파구 모색
10월 경주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미국 관세문제가 APEC을 통해 완벽하게 깨끗하게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이 나오면 좋겠다"며 "AI와 관련된 새로운 협력이라던가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등 협력거리가 상당히 많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물리적인 것은 어떻게든 맞춰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실제 APEC을 통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조금 더 소프트웨어적인 것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실질적 성과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잃어버린 10년"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 찾아야
최태원 회장의 진단은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의 본질을 드러낸다. 과거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제조업이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기술력 향상으로 인해 경쟁우위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제조업 경쟁력은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지만, 이러한 순위가 미래를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최 회장의 판단이다. 특히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제조업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에 실패할 경우 급속한 경쟁력 상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경고는 단순한 위기론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한 절박한 메시지로 읽힌다. AI 기술을 통한 제조업 혁신, 일본과의 전략적 협력, 그리고 APEC을 통한 국제협력 강화 등 구체적인 해법도 함께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제 관건은 이러한 진단과 처방이 실제 정책과 기업 전략에 얼마나 반영될 것인지, 그리고 한국이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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