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국회에서 통과되어 15일 공포된 상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연일 새로운 법안들이 발의되며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법안이 발의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7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은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 찬성 220표, 반대 29표, 기권 23표로 가결된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이사가 직무수행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또한 감사위원의 사외이사 여부에 관계없이 합산 3% Rule이 적용되며, 사외이사의 명칭이 '독립이사'로 변경되고 의무선임비율도 1/4에서 1/3로 상향 조정됐다.
특히 전자주주총회 병행 개최가 2027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어, 대규모 상장회사의 주주 참여 기회가 확대될 예정이다.
한화투자증권 엄수진 애널리스트는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여권의 개혁 행보는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7월 17일에는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 대한 집중투표제 도입 의무화와 감사위원 전원에 대한 분리선임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법안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이 정책은 7월 9일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에 포함됐다. 개정안은 자기주식을 원칙적으로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보유를 허용하되 직후 정기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7월 14일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는 기존의 구속적 주주제안과 달리 법령 및 정관에서 정한 사항 외에도 더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제안을 가능하게 한다. 주주총회에서 가결되더라도 곧바로 효력이 발생하지 않지만, 경영진과 소수주주 간의 소통을 강화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지배구조 개혁은 상법을 넘어 자본시장법 영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M&A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이 핵심이다. 이정문, 천준호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들은 특정 주주가 25% 이상 지분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 잔여 주식 전부에 대해 공개매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기업 M&A 과정에서 대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높은 가격에 지분을 매각할 수 있으나 일반주주는 제값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1997년 도입되었다가 1998년 폐지된 제도가 27년 만에 부활하는 셈이다.
분할신설회사 신주 우선배정 제도도 주목받고 있다. 상장회사가 고성장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후 상장할 때, 모회사 소액주주들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신설 자회사의 가치 상승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방안이다.
이재명 정부의 지배구조 개혁에는 세제 개편도 포함됐다. 이소영 의원이 4월 발의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법안은 배당성향 35% 이상 상장회사로부터의 배당소득을 종합소득에서 분리하여 별도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현행 최고 49.5%의 누진과세 대신 2,000만원 이하 14%, 2,000만원 초과 3억원 이하 20%, 3억원 초과 25%의 세율을 적용해 배당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1일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힘에 따라 이르면 7월 말 발표될 첫 세법 개정안의 핵심 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지배구조 규제 개혁의 배경에는 소액주주 권익 보호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대주주와 경영진 중심의 기업 운영에서 벗어나 모든 주주의 이익을 균형 있게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특히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14건의 상법 개정안이 통합되어 처리된 사례에서 보듯, 여야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다만 기업들은 급작스러운 규제 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등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가 근본적인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부터 M&A 의무공개매수, 배당소득 분리과세까지,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개혁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법안이 발의되는" 현 상황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역동적 과정으로 해석된다. 앞으로 이러한 개혁들이 어떻게 구현되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