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c-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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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의 한끗차이] 렉티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그리고 잃어버린 그녀
초등학교 시절, 동화책 일곱 권을 순식간에 읽어 치운 적이 있다. 만약 책이 더 있었다면 멈추지 않고 계속 읽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하루에 난해한 철학책을 포함해 세 권을 읽기도 했다. 책장을 덮은 뒤 피로가 엄습해도, 그 순간 나는 묘한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지난겨울, 우연히 집어 든 한 권의 책이 내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초기 기독교 사막의 수도승들에 관한 기록이었다. 그들은 어떤 한 구절을 읽기 위해 며칠씩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영혼마저 불태운다’라고 했다. 그 대목에서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읽던 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그 순간의 정지된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독서에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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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기금형제도 도입 그 이후(3)
지난 20년간 한국의 퇴직연금, ‘계약형’ 제도는 가입자와 운용사(퇴직연금사업자)가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엇박자의 역사였다. 가입자는 높은 수익률을 간절히 원했지만, 퇴직연금사업자는 운용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만, 선택은 오로지 가입자의 몫이니 가입자가 원하는 원리금 보장 상품 판매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근저에는 ‘일임형(discretionary investment)’을 금지한 감독 규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부는 가입자 보호와 자산운용 자기의사결정이라는 명분 아래, 가입자가 전문가에게 자신의 자산 운용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그 결과, 가입자는 ‘알아서 잘 굴려달라’는 난감한 절벽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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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기금형제도 도입 그 이후(2)
모든 새로운 변화는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을 동반한다. 지난해 발표된 ‘퇴직연금 기금전문운용기관 도입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나타난 기금형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 여론은 이러한 현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손실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기존 제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냉소적 불신. 이러한 반대 이유는 기금형 제도 자체의 본질적 결함이라기 보다는, 20년간 계약형이라는 익숙한 틀에 갇혀 있던 우리 사회가 ‘기금형’이라는 낯선 개념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이다.중요한 것은 응답자들이 현재 치열하게 논의 중인 ‘수탁자 책임 강화’라는 핵심적인 안전장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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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기금형제도 도입 그 이후(1)
2005년 도입 이후,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계약형’이라는 단일한 틀 안에서 운영되어 왔다. 사용자가 금융기관(퇴직연금사업자)을 선정하고, 근로자는 그 안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구조다. 이 견고한 틀 속에서 가입자, 즉 제도의 진정한 주인인 근로자들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낮은 수익률에 대한 불만, 전문가의 부재, 그리고 내 자산을 운용할 사업자를 직접 선택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이러한 억눌림은 마치 휴화산처럼 조용히 들끓고 있었다. 지난해 발표된 ‘퇴직연금 기금전문운용기관 도입에 대한 인식조사(2025년 9월, 전국 만 20세 이상 남녀 근로자 2천명) 결과는 단순한 여론조사를 넘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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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s View] 법정에서 빠져나와야 할 ‘세기의 이혼'
서울고법 가사1부(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는 13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파기환송심 조정기일을 연다. 지난 1월 9일 비공개 첫 변론 이후 4개월 만이다. 2017년 7월 최 회장이 이혼 조정을 신청한 시점부터 헤아리면 두 사람의 송사는 어느덧 9년째에 접어든다. 대법원이 그어둔 선, 더는 비켜갈 수 없다지난해 10월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심이 명령한 1조 3808억원 재산분할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위자료 20억원만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이 짚은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2심이 노 관장의 기여도 근거로 삼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은 “선량한 풍속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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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s View] 삼성에서 카카오까지 번진 성과급 도미노, 누가 '승자의 저주'를 부르나
발화점은 SK하이닉스였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9월 노사 합의를 통해 초과이익분배금(PS) 상한선(기본급의 1000%)을 폐지하고,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이익 비율' 자체를 보상 공식으로 못 박은 첫 사례였다.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25년 영업이익 47조 2063억원의 10%, 4조 7200억원이 재원으로 풀리며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올해 초 기본급 대비 2964%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1인당 평균 1억원을 훌쩍 넘긴 보상이 현실이 되자, 경쟁사와 산업계 전반의 보상 공식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노조의 '15%' 요구, 컨센서스 360조 시대의 무게이 충격파는 곧장 삼성전자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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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의 한끗차이] 강자로 살아가는 법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다만 스스로를 갉아먹는 고약한 재주였을 뿐. 나는 타인의 대화 속에 불쑥 끼어들어 흐름을 끊고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묘한 재능이 있었다. 누군가 삶의 한 자락을 꺼내놓으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가로채 내 비슷한 경험담을 늘어놓곤 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해졌지만, 당시 내 마음 한구석에는 어떻게든 존재를 증명받고 싶다는 절박한 욕망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그렇게 쏟아낸 말의 끝은 늘 씁쓸했다. 괜히 끼어들었다는 자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나는 그 감정을 애써 외면했다. 어느 날, 그 기이한 꿈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왜 이렇게 시끄러워?”낡은 나무 대문을 밀고 마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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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의 제 1 성공 조건
현 시점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금형제도가 도입되면서 강조되는 것 중 하나가 근로자의 선택권 확대다. 결론부터 말한다. 현재의 방식, 즉 '사용자 중심의 사업자 선정 관행'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 선택권은 소기의 효과를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기금형에서의 수탁법인(금융기관 개방형) 선정이나 계약형에서의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 선정을 왜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가 독점적으로 결정하는가. 이것은 명백한 구조적 오류이자,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 발생의 온상이다.1. '청지기 이론'이라는 이름의 허상일각에서는 퇴직연금 운영에 있어 사용자의 역할을 '청지기(Steward)'로 규정하려 한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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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의 한끗차이] 가면 속의 악마와 나
“중보기도 해주세요. 틈틈이.”문 사장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수년 만에 받은 첫 연락이 바로 중보기도라니, 난 당황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그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머릿속에 흐릿한 조각들만 맞춰볼 뿐이었다. “그거 알아요. 스무 살 때부터 내가 무엇을 꿈꿔왔는지?”문 사장의 꿈은 한결같았다. 자신의 브랜드로 전국 백화점을 가득 채우고, 더 나아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꿈을 안고 살았다. 빨간 나비가 날갯짓하는 디자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나비처럼 화려하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망은 세월이 깊어질수록 단단해져 갔다.스무 살 무렵 남대문시장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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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오프 전문 보험 비즈니스를 육성하자!
예별손보(구 MG손해보험)의 매각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매수인에 대해 1조원 이상의 예금보험공사의 지원이 언급되고 있다. 그래도 선뜻 인수하려는 매수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사태를 보며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 왜 한국 보험산업의 구조조정은 항상 “늦게” 이루어질까?보험회사의 부실은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는다. 자본이 서서히 잠식되고, 손해율이 누적되며, 금리 환경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응은 늘 마지막 단계에서야 시작된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매각이냐, 공적 개입이냐. 그리고 그 사이의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가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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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의 한끗차이] “나를 그냥 놔두시오.”
지난여름 이후, 나는 M의 어떤 메시지도 열어보지 않았다. 궁금하기는커녕,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울음처럼 터져 나오는 외침이 있었다. “그만, 나를 내버려 두라고!”20년 전, 내가 M을 돕는다 했을 때 주변에서는 의아해했다. 그는 파산자였고, 빚더미에 쫓기는 사람이었다.나는 그를 강하게 옹호하며 ‘믿음’을 강조했다. 마치 ‘그를 믿는 내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했다.“걱정하지 말라.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M이 보낸 메시지에 응답을 멈췄다. ‘함께 행복해지자’라던 지난날 그의 말은 결국 나를 꼬드기기 위한 말이었다. 어느 순간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즉 사무실임대료도 못 내던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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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의 한끗차이] 평범한 얼굴, 숨겨진 악마
“그녀는 악마다.”그 한마디는 심 대표의 갑작스러운 분노와 함께 터져 나왔다. 마치 성서 속 절대 악 ‘사탄’을 불러내듯, 그는 거리낌 없이 ‘악마’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악마’는 괴물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칠고 붉은 피부, 길게 내민 혀, 솟구친 귀 등 괴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하고 온화한 얼굴 속에 숨어 있다는 것. 고향 냄새나는 시골스러운 얼굴, 친근한 미소를 띤 이가 바로 그 악마일 수 있다. 악마는 위장술의 대가다. 가까운 이웃, 평범한 일상 속에 악마가 숨어 있곤 한다.악마를 찾아내는 열쇠는 피해자이다. 아무리 능수능란한 위장과 은폐술을 써도, 피해자가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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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교육 활성화를 위한 정부 역할의 재정립
퇴직연금 가입자교육이 재저리를 잡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주도할 책임은 당연히 정부 감독 당국에 있다. 그럼 정부 감독당궁이해야 할 일을 살펴 보자. 첫째,. 사업자 위탁 구조의 근본적 개혁.단순히 사용자의 교육 역량 부족을 퇴직연금사업자에게 위탁하는 현행 방식은 교육 전문성이 없는 사업자의 부담만 가중시킨다. 이로 인해 교육은 실효성을 상실한 채 사업자의 마케팅 도구로 전락하며, 미이행 시 사업자가 책임을 지는 악순환이 고착화되었다. 제도 도입 20년 차에 접어든 현재, 정부는 사용자-사업자 간 책임 소재를 명확히 구분하고 교육 전문 기관 연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둘째, 교육 인프라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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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가입자교육, 20년의 실패를 직시하라
퇴직연금가입자들에 대해 교육을 시키라는 법 조항은 2005년 12월 퇴직연금제가 실시되던 시점부터 적용되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동안 한번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해도 조금도 과장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는 인식의 부재와 관심의 결여다. 대부분의 가입자는 퇴직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교육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특히 확정기여형(DC) 가입자는 직접 투자 책임을 지지만 운용 원리를 모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노후 설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투자는 복잡하다"는 선입견이 교육 참여 동기를 약화시킨다. 금융 문해력 부족은 복잡한 용어(IRP, TDF, 자산배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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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가입자교육, "혜택이 아닌 권리다"
퇴직연금 가입자 중 자신에게 교육을 받을 법적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궁금한 것이 생기면 유튜브를 뒤지는 수고를 하게 되고, 그마저도 개인의 상황에 맞는 답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제도도, 상품도, 자산운용의 방법도 모른 채 수십 년의 노후 자산을 그냥 맡겨두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수익률이 유독 저조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가입자교육의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32조는 사용자가 매년 1회 이상 퇴직연금 교육을 실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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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ETF 매매, '업권의 벽'을 넘어 '가입자의 편익'으로
최근 퇴직연금 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ETF(상장지수펀드) 투자다. 저금리 시대에 노후 자산의 수익률을 높이려는 가입자들의 열망이 실시간 매매가 가능한 ETF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은행과 보험사 가입자들은 증권사 가입자와 달리 실시간 매수·매도가 제한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스템의 문제를 넘어, 금융권역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과 '가입자 차별'이라는 본질적인 과제를 던지고 있다.'매매중개업' 라이선스의 해석, 실질 과세 및 운용 원칙에 부합하는가?현재 금융당국이 은행과 보험사의 실시간 ETF 거래를 제한하는 법적 근거는 자본시장법상 '매매중개업' 라이선스 유무다. 은행은 신탁 방식으로 자산을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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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칼럼⑮] “모두가 1등이라는 기이한 시장, 진짜 1등은 어디에?”
지난 12편부터 우리는 미국 퇴직연금의 진화 과정을 벤치마킹하여 한국 계약형 제도의 해법을 모색해 왔다. 수탁자 책임이 있는 거버넌스를 세우고(12편), 제대로 된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며(13편), 단일 TDF로 규모를 키우는(14편) 과정이었다. 이번 15편은 이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모든 시스템이 갖춰졌다 해도 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책임’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시장에 건전한 경쟁을 불러일으킬 마지막 단계, ‘성과의 검증과 환류’를 다룬다. - 편집자 주 연말이 되면 기업의 인사 담당자 박 팀장의 책상 위에는 수십 장의 퇴직연금 제안서가 쌓인다. 그런데 제안서를 넘기던 박 팀장의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A 증권사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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