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 도시화에서 진행되는 경쟁은 태어나기도 전 복중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경쟁을 위해 태아 교육은 넘버원(NO.1) 반도체 칩마냥 프로그램화 되어가고 있다. 무조건 일등을 목표로 달려가는 사회와 국가이기에 우리나라는 전 전 세계에서 불명예스러운 일등도 최고 수준이다.
3만 불 시대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인권과 복지는 기형이다고 할 수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다고 할 뿐 번갯불에 콩 볶는 수준이다. 넘버원이 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나 열정이 없겠는가. 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넘버원은 살생부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우리 시대가 한곳으로 치우쳐 줄을 서듯 살생부에 이름 올리는 것이 취직이라고 한다. 당연히 취업이 최고 일 수 있지만, 잠시 고민할 용기를 선택했으면 싶다.
출생에서부터 넘버원을 버리도록 교육하는 가정이 필요하다. 대신 성장하는 과정에 온리원(only one)을 교육하는 가정과 학교가 되었으면 싶다.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가치와 능력을 찾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온리(only: 유일한, 단 하나, 최상의) 라는 말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성별과 나이에 따라 생각이나 성장이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모두 한 줄을 세우고 넘버원을 강요하고 있다. 신체와 성장의 속도. 인지하는 의식과 성격.감성과 지성 등 다른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에게 획일적 넘버원을 강요하는 20세기가 폐기되지 않고 21세기 유전되고 있다.
정부는 청년 취업과 실업률에 대한 짐을 통계화할 뿐 구체적인 방안은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더 많이 채용해 주길 압박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교육에서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수의 경쟁이기에 영원하지 않은 넘버원 칩을 갈아 끼워야 한다. 작가들이 전업 작가로 살기가 쉽지 않다. 그림 한두 점 팔린다고 평생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왕 한두 점에 가격을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들 사이에 대기업처럼 인기 있는 곳이 있다. 누구 그림이 팔렸더라. 어떤 그림이 유행이더라. 창작이 어려워 표절해서라도 살아남고자 하는 열정을 보인 작가들도 없지 않다고 볼 수 없다. 누구보다 (온리원)이 확고하고 정확한 곳이 예술이며, 그 영역은 문화로 꽃피울 수 있는 무한 확장된 곳이다.
39년 전 한글을 작업하던 시절엔 한글 문자는 미술판에 취급이 안 되었다. 아예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개인전을 통해 한글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문자.서체.도형 한글로 다양한 방법으로 발표한 것은 저작권이 발동되어 한글과 관련된 작품 중에 표절이 의심된 작가들은 모두 작업을 중단하거나 피해보상을 해야 했다.
작가로서 넘버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데 시간과 경제적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많은 작가가 고통을 참아내는 것은 ‘나’ 답게 살고자 하는 열정 때문 아니겠는가.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며,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작업을 하는 작품이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부족한 곳이 있지만 창작의 수고로움이 느껴지는 작품에서 도리어 진부한 한국미술에 대한 희망이 보인다. 앞으로 가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온리원의 동질감이 느껴진다.
금보성 현대시 등단, 화가, 금보성아트센터 관장. 한국예술가협회이사장, 백석대교수, 한글회화 개인전78회.
이수환 글로벌에픽 기자 lsh@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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