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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와 외부효과

2025-12-24 09:55:55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이미지 확대보기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어릴 적 외갓댁은 춘천 변두리의 시골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축산업을 크게 하셨고, 동네에서 입김이 꽤 센 분이었다. 수의사가 따로 없던 지역이라, 가축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으레 외갓댁을 찾곤 했다.

하루는 송아지 태어나는 걸 보러 가자며 나를 데리고 급히 길을 나서셨다. 송아지가 발부터 나오는 ‘역아’ 상황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송아지 다리를 붙잡고 당겼고, 몇십 분의 사투 끝에 출산은 무사히 끝났다.
아름답지 않은가. 갓 태어난 송아지가 비틀거리며 뛰노는 모습을 보며, 그때의 나는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러나 경제학을 배운 지금에 와서야, 그 장면이 사실은 마을의 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날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부은 어른들 가운데 누구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가 없는 도움은 지속되기 어렵다. 그것은 한 번의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소비하는 마을 잔치에 그치기 쉽다. 만약 당시의 내가 경제학을 알았다면, 송아지 주인에게 도움의 대가를 치르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역시 도움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유용한 도움을 제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것이 시장경제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힘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 준 만큼만 대가를 받는 사회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최근 극우 단체들이 외치는 ‘자유시장경제’라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나 역시 그 이상 자체는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를 가로막는 근본적 요인이 있다. 바로 ‘외부효과’다.
어떤 도움은 돈으로 보상하기 애매하다. 예컨대 귀갓길이 어두워 전봇대에 가로등을 설치했다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지만 나는 그 대가를 받지 못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긍정적 외부효과’라 부르며, 이런 재화나 서비스는 항상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보다 적게 생산된다.

반대로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이 흔했다. 담배 연기는 위로 올라가기에, 윗집이 창문을 열면 연기가 그대로 유입된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담배를 피울 권리가 보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랫집 사람이 윗집에 피해를 줄 ‘권리’를 가진 셈이고, 이런 현상을 ‘부정적 외부효과’라고 한다. 부정적 외부효과가 있는 활동은 항상 과도하게 이루어진다.

외부효과 속에서도 자유시장경제가 작동하려면 권리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피해를 줄 권리, 피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분명하다면, 당사자 간 협상을 통해 거래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윗집이 아랫집에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대신 베란다 흡연을 중단하게 하는 계약이 체결된다면, 시장의 논리 안에서 양측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협상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피해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돈까지 내야 한다는 감정적 저항 때문이다. 그래서 법이 등장한다. 법은 피해자에게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고, 가해자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을 의무’를 부과한다. 또 긍정적 외부효과가 충분히 생산되지 않는 영역에는 공기업이나 공공서비스를 통해 생산을 강제한다. 대중교통이 대표적이다.

자유시장경제의 본질은 서로 돕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대가를 온전히 주고받기 어려운 영역이 너무 많기에, 극우 단체들이 상정하는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는 현실에서 작동할 수 없다. 결국 누군가는 더치페이를 제안하고, 회비를 걷고, ‘싫은 소리’를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 질서 속에서의 진짜 리더란, 바로 이런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좋은 것은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편 가르기 논쟁을 넘어, 지속 가능성을 논의하는 단계로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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