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임시주총에서 처리한 3개 안건은 모두 경영권 분쟁과 직결되어 있다. 먼저 1호 안건인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이 가결됨으로써 감사위원 선거의 무대가 마련됐다. 기존 1명이던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2명으로 늘리는 내용으로,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한 차례 부결된 후 약 6개월 만에 통과했다. 이 정관 변경이 없었다면 이번 감사위원 분리선출 표 대결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사위원 한 자리'가 승패 갈라
3개 안건 중 가장 큰 승부처는 3호 안건이었다. 고려아연 측과 MBK·영풍 측이 각각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후보를 내세우고 맞붙었다.
고려아연은 한국·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하고 딜로이트에서 약 30년간 회계감사 업무를 담당한 백인규 후보를 추천했다. MBK·영풍 측은 네덜란드 연기금 운용사 APG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책임투자와 기업지배구조 업무를 총괄한 박유경 후보로 맞섰다.
표결 결과는 일방적인 압승이었다. 출석 의결권 있는 주식 622만 5,934주 중 백 후보는 509만 2,815주의 찬성표를 얻어 찬성률 81.8%로 선임됐다. 박 후보는 173만 9,065주의 찬성만 받아 찬성률 27.93%에 그쳐 과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독립이사 4명 선임(고려아연 추천 이형규·서은숙 2명, MBK·영풍 추천 심혜섭·이준봉 2명)과 감사위원 1명 추가(고려아연 추천 백인규)가 더해지면서 이사회 내 세력 구도는 기존 9대5에서 12대7로 재편됐다.
‘합산 3%룰’ 이 승패 갈라
감사위원 분리선출에 적용되는 '합산 3%룰'이 최윤범 회장 측의 승리를 결정했다. 이 규칙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는 제도다. 대주주의 지분 우위가 크게 희석되면서 기관투자자, 외국인, 소액주주의 표심이 승패를 가르는 변수로 떠올랐다.
MBK·영풍 연합은 지분 기준 약 42.1%를 확보해 최 회장 측의 38.76%를 앞섰다. 하지만 3%룰 앞에서는 지분율의 우위가 작동하지 않았다.
기관투자자와 주주 커뮤니티의 신뢰도 차이가 결과에 반영됐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9곳 중 8곳이 백 후보 선임에 찬성을 권고했다. ISS, 글래스루이스를 포함해 이건존스, PIRC,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 한국의결권자문, 한국ESG평가원이 백 후보의 회계·감사 분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반면 MBK·영풍 측을 지지한 곳은 한국ESG기준원(KCGS) 한 곳뿐이었다.
고려아연 지분 5.44%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양쪽 후보 모두에게 찬성표를 던지기로 하면서 사실상 중립을 택했다. 한화와 LG 등 주요 전략적 주주, 그리고 기관·소액주주들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했다.
주총장에서도 양측의 공방이 치열했다. 영풍 측 대리인은 백 후보가 몸담았던 딜로이트와 고려아연 간 업무 관계를 거론하며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고려아연 우호주주는 즉시 반박했다. "한국과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가지고 있고 딜로이트에서 30년 동안 회계감사와 재무자문 업무를 했다"며 "감사위원회 역할을 고려했을 때 적합한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맞섰다.
박 후보도 직접 나섰다. "한 사람도 없는 것보다 한 사람의 독립이사가 있는 것이 전체 주주 이익에 훨씬 더 부합한다"고 호소했지만, 이미 표심은 결정된 상태였다.
이사회 내 독립이사 4명 선임을 놓고는 예상대로 양측이 2석씩을 나눠 가졌다. 다만 집중투표제가 적용된 독립이사 선거에서 MBK·영풍 측 후보들이 득표 순위 1·2위를 차지하면서 최대주주로서의 영향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역대 최대 실적이 뒷받침한 경영권 방어
최 회장 측은 현 경영진의 실적과 미래 성장 전략을 적극 부각해왔다.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6조37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871억원으로 126.8% 늘었다.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은 1조3332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철금속 가격 상승도 실적을 견인했다. 올해 상반기 국제가격은 아연이 전년 동기 대비 약 22% 올랐고, 금은 53%, 은은 141%, 동은 39% 각각 상승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다. 고려아연은 기존 아연·연 중심의 제련사업에서 핵심광물, 자원순환, 이차전지 소재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켐코는 황산니켈 생산능력을 확대 중이며, 미국에서는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한 대형 제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특히 미국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는 2029년 시운전을 목표로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한 비철금속 13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내년 3월 또 다시 '분수령' … 이사 8명 임기 끝나
다만 이번 승리로 경영권 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내년 3월 정기주총이 차기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정기주총에서 임기가 끝나는 이사는 총 8명으로 이번 임시주총의 교체 대상보다 많다. 감사위원 1명도 다시 선임 대상에 오른다.
이 가운데 최윤범 회장 측 인사는 6명, MBK·영풍 측 인사는 3명으로 파악된다. 현재 12대7인 이사회 구도가 내년 주총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MBK·영풍 측이 내년 임기 만료 9석 중 5석을 확보할 경우 이들 측 이사는 현재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난다. 최윤범 회장 측과의 격차는 10대9까지 좁혀질 수 있다.
내년 정기주총에서도 독립이사 선임에는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는 만큼 MBK·영풍의 지분 우위가 그대로 이사 선임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분율의 영향력이 현재보다 이사회 내 격차를 좁히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높다.
최윤범 회장 측이 경영권을 수성하려면 향후 MBK·영풍과의 지분 격차를 좁히거나 안정적인 우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MBK·영풍이 지분율 기준 42.1%의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내년 정기주총 전에 장내 매수나 우호 지분 확보 경쟁을 펼칠 수 있다. 또한 정관 변경이나 주총 결의에 대한 법적 공방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의 표심이 3%룰이 적용되는 감사위원 선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만큼, 내년에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사회 과반을 유지하기 위한 최윤범 회장 측의 지분 확보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편 영풍·MBK 측은 이번 결과에 대해 "이번 선임으로 추천 이사가 총 7명으로 늘어나 이사회의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할 기반이 확대됐다"며 "박 후보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사회 우위는 넘겼지만 견제 역할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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