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두 기업이 보여주는 성장 곡선은 흥미롭게도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2024년과 올해 2025년 상반기 실적을 보면, 경동나비엔은 해외 시장 공략과 신사업 다각화로 고속 성장을 거듭하는 반면, 귀뚜라미는 본업 부진 속에서도 사업 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조(兆) 단위 매출로 진입한 한국 보일러 업계의 양대 산맥이 현재 어떤 전략으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고속질주 경동 … 정체 귀뚜라미
경동나비엔의 2024년 전체 매출액은 1조2,468억원으로, 2020년 7,463억원 대비 5년간 약 40%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 2025년 상반기 기준 7,575억원의 매출로 전년 동기 대비 20.1% 증가라는 두 자리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906억원으로, 영업이익률 11.9%를 기록하며 수익성까지 함께 개선되는 모양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분기 실적인데, 2분기 영업이익이 5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7%라는 급증을 기록했다. 매출도 3,92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5% 증가하며, 시장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에 비해 귀뚜라미홀딩스(지주사 기준)의 2024년 연결 매출액은 1조2,507억원으로, 경동나비엔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성장의 질감은 다르다. 귀뚜라미 홀딩스의 영업이익은 496억원으로 전년 대비 23.5% 증가했지만, 이는 전체 그룹 차원에서의 성과이다. 문제는 보일러 본업(귀뚜라미 보일러 부문)에 있다. 본업 매출은 2024년 3,225억원으로 2023년 3,426억원 대비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4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에도 23억원의 적자를 냈으므로, 보일러 본업이 2년 연속 적자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다만 2024년 당기순이익은 213억원으로 2023년 16억원 대비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보험료수익 338억원 등 영업외수익 덕분인 것으로 파악된다.
경동나비엔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년 기준 약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귀뚜라미 보일러 본업의 3년 평균 영업이익은 약 45억원 수준으로 극히 미미하다. 두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성장 동력에 명백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성장 경로
국내 시장에서도 신사업 확대로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해 가전업체 SK매직의 주방기기 영업권을 약 400억원에 인수한 후 올해 3월 '나비엔 매직'을 출시했다. 이를 통해 보일러에서 온수기, 환기청정기, 주방기기까지 '생활환경 솔루션'으로의 진화를 꾀하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2028년 창사 50주년을 목표로 생활사업부 매출 3,000억원, 국내 총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2032년까지 전사 매출 10조원을 노리며 HVAC 솔루션과 에어컨 등 냉방 분야를 강화할 계획이다.
귀뚜라미는 다른 경로를 선택했다. 2019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이후, 보일러라는 '성숙한 본업'에서 벗어나 사업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24년 귀뚜라미 그룹 전체 매출 1조 7,800억원 중 70%가 보일러 외 사업에서 나온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냉방 계열사(귀뚜라미범양냉방, 센추리, 신성엔지니어링 등)가 그룹 매출의 40%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에너지 계열사도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보일러 본업은 친환경 제품 강화와 렌탈 서비스 확대로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올해 출시한 '거꾸로 NEW 콘덴싱 P10'과 '거꾸로 ECO 콘덴싱 L20' 등 친환경 제품이 국내 시장 점유율을 유지시키고 있으며, 현대렌탈케어와 협력한 보일러 렌탈 서비스 '따숨케어'를 통해 새로운 고객 접점을 확보하고 있다.
해외 시장 주도권 확보 전략
경동나비엔의 글로벌 전략은 '북미 심화'와 '신규 시장 개척'이라는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북미 시장에서 콘덴싱 온수기 제품의 기술력과 신뢰도를 바탕으로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콘덴싱 퍼내스 및 HVAC 솔루션 도입으로 시장을 다시 정의하려 시도 중이다. 공장 확설도 적극적으로 진행 중인데, 서탄공장의 연간 생산규모를 현재 200만대에서 2026년까지 439만대 수준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르면 2026년까지 북미 현지 생산시설 구축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국내 보일러 전체 수출에서 경동나비엔은 압도적 88%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총 47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시장에서의 성장도 두드러지는데, 지난해 러시아 매출액이 723억원을 기록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귀뚜라미의 글로벌 전략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보일러 본업의 해외 매출은 2023년 435억원에서 2024년 557억원으로 증가했지만, 국내 매출 하락의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 보일러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경동나비엔에 비해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다만 냉방 사업의 해외 진출은 활발하다. 센추리는 해외 원전 및 특수선 냉동공조기기 사업을 강화하고 있으며, 귀뚜라미범양냉방도 글로벌 냉각탑 프로젝트 수주를 지속하고 있다. 귀뚜라미그룹은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 시장에 지역 특화 신제품을 선보이고, 거점을 중심으로 주변국 시장 공략을 추진하고 있다.
친환경·스마트화 경쟁
경동나비엔의 기술 전략은 '고효율·친환경'을 핵심으로 한다. 1988년 업계 최초로 콘덴싱 보일러를 개발한 이후 이것이 경동나비엔의 기술력 상징이 되어왔다. 최근에는 'AI 기반 온수 최적화' 기능이 탑재된 '나비엔 콘덴싱 ON AI'를 출시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히트펌프 전기 온수기, 콘덴싱 하이드로 에어컨, 숙면매트 등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특히 온수레디시스템이라는 수압 가변 기술로 에너지 절감과 편의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2023년 357억원, 2024년 409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지속적인 혁신을 추진 중이며, 올해 상반기에는 분기 매출 대비 3.55%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동나비엔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에서 가정용 보일러 브랜드 선호도 1위(33.1%)를 기록했고, 2025년 '프리미엄브랜드지수', '품질만족지수' 등 주요 소비자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귀뚜라미의 기술 전략은 '친환경 표준화'와 '산업용 특화'로 구분된다. 보일러 분야에서는 '거꾸로 NEW 콘덴싱 P10', '거꾸로 ECO 콘덴싱 L20' 등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를 강화하고, 3세대 블루투스카본매트와 카본보드 같은 신제품을 확대하고 있다. 냉방 사업의 기술력은 이미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신성엔지니어링의 드라이룸 시스템과 센추리의 원전·특수선 냉동공조 기술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귀뚜라미도 올해 브랜드 고객충성도 조사에서 가정용 보일러 부문 9년 연속 1위를 기록했으나, 이는 레거시 브랜드로서의 위상일 수 있다. 본업 실적 부진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 리스크 및 당면 과제
경동나비엔이 직면한 리스크는 급속한 성장에 따른 구조적 도전이다. 첫째, 국내 건설경기 침체와 보일러 신규 설치·교체 수요 감소라는 내수 시장의 한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SK매직 인수 같은 신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이 과제다. 둘째, 공장 증설과 SK매직 인수로 인한 자본 투자 부담이 현금 유동성 관리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인한 관세 인상이 북미 시장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다. 실제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경동나비엔은 "해외에서는 관세 이슈에 대비한 선제 대응 효과가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귀뚜라미가 직면한 과제는 더 근본적이다. 첫째, 보일러 본업의 2년 연속 영업적자다. 이는 원가 압박, 유가 변동성, 시장 포화 등 복합적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둘째, 브랜드 신뢰도 하락의 가능성이다. 본업 부진이 오래 지속되면 기업 이미지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기술 유출 및 법적 분쟁 리스크가 존재한다. 보일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식재산권 분쟁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넷째, 글로벌 규제 강화다. 유럽과 영국 등에서 가스보일러 설치 금지 확산이 진행되고 있으며, 친환경 인증 및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응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다섯째, 2025년 물류센터 안전사고 등 임직원 복지 및 ESG 현안이 사회적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성장 vs 구조 개혁' 줄타기
경동나비엔은 명확한 성장 트랙을 선택했다. 해외 시장에서의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북미 시장 심화, 신규 시장 개척, HVAC 통합 솔루션 확대라는 전략으로 2032년까지 매출 10조원을 목표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20% 성장률은 이러한 전략이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관세 리스크, 급속한 성장에 따른 조직 통합, 신사업 확대에 따른 투자 부담을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귀뚜라미는 '위기 속 기회 찾기'라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보일러 본업의 적자 극복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다만 냉방, 에너지, 레저 등 다양한 사업부가 그룹 매출의 70%를 담당하면서 지주사 차원의 실적 개선은 이루어지고 있다. 귀뚜라미가 2030년 그룹 매출 3조 달성 목표를 달성하려면, 냉방 사업의 지속적 성장과 보일러 본업의 안정화가 동시에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보일러·냉난방 시장의 두 주역은 이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모색하는 중이고, 귀뚜라미는 '종합 에너지 그룹'으로의 구조 개혁을 추진 중이다. 어느 쪽이 한국 보일러 시장의 미래를 더 잘 주도할 것인지는 향후 몇 년의 경영 성과에 달려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두 기업의 경쟁과 혁신이 한국의 냉난방 에너지 산업 발전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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