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3년 연평균 18.9%의 고속 성장을 이어가던 삼성생명 퇴직연금 수탁고가 2024년 4.5%로 급락하면서 시장 지배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특히 수익률을 중시하는 고객들이 증가하면서 보수적 운용에 머물러 있는 삼성생명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5년간 29조→50조 성장 했지만 수탁고 급락
삼성생명의 퇴직연금 수탁고는 2019년 29조원에서 시작해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2021년 6월 34조원을 기록한 후 2023년 말 48조1513억원까지 급성장했다. 이 기간 연평균 18.9%의 높은 증가율을 보이며 독보적인 1위 지위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2024년 상황이 급변했다. 연말 50조3264억원으로 사상 최초로 50조원을 돌파했지만, 증가율은 4.5%에 그쳤다. 전체 퇴직연금 시장이 연평균 13% 수준의 고성장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삼성생명만 홀로 성장 둔화를 보인 것이다.
이는 절대 규모로는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대적 경쟁력에서는 심각한 위기 신호로 해석된다. 실제로 2021년 전체 시장 점유율 12.9%를 차지했던 삼성생명이지만, 최근 시장 성장률 대비 저조한 증가세로 점유율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
증권사 공세에 무너지는 보험사의 아성
삼성생명의 성장 둔화 배경에는 치열해진 업권 간 경쟁이 있다. 특히 증권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IRP 부문 수익률 상위 15개 사업자 중 8개가 증권사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고수익률을 무기로 고객을 빼앗아가고 있다.
반면 삼성생명을 비롯한 보험업계는 국고채 등 보수적 투자에 치중하며 평균 수익률 2.21%에 그치고 있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보험업계의 전통적 강점이었던 안정성마저 매력을 잃어가는 상황이다.
실물이전 제도 도입, 고객 선택권 확대가 부메랑
실제로 제도 시행 3개월간 약 2조4000억원, 4만건의 실물이전이 이뤄졌는데, 순유입 측면에서는 증권사가 4051억원의 수혜를 봤다. 높은 수익률과 다양한 상품을 앞세운 증권사들이 실물이전 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다.
삼성생명의 성장 둔화는 구조적 요인도 크다. 퇴직연금 수탁고의 상당 부분이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나온 만큼, 이미 대부분 계열사의 가입이 완료되어 신규 대량 유입이 제한적이다.
또한 DB형 퇴직연금 도입 기업 중 적립률 100%에 도달한 대기업들이 늘어나면서 DB형 중심인 삼성생명의 적립금 증가율이 자연스럽게 둔화되고 있다. 50조원이라는 대규모 자산 기반에서 나타나는 기저효과도 증가율 둔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IRP 고객들 불편 호소 늘어나"
업계 관계자는 "최근 IRP를 삼성생명에 맡긴 고객들 중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투자 상품 선택권이 제한적이고, 증권사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개인이 직접 운용 방향을 결정하는 DC형과 IRP에서는 상품 다양성과 수익률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고 있다. 증권사들이 DC형과 IRP 각각에서 실적배당형 비중을 48.7%, 44.6%까지 끌어올린 반면, 보험사들은 여전히 90% 이상을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집중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퇴직연금 시장이 단순한 자금 보관에서 적극적 자산 운용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삼성생명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절대 규모 1위라는 현재 지위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상품과 서비스를 혁신할 것인가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향후 IRP 시장이 2032년 전체 퇴직연금의 30%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개인 고객의 다양한 투자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상품 라인업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6년간 1위를 지켜온 삼성생명의 퇴직연금 왕좌가 흔들리기 시작한 2024년. 과연 삼성생명이 변화하는 시장에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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