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전통문화에서 야자수는 “생명의 나무”로 불린다. 그늘을 제공하고, 모래를 붙잡아 해안 침식을 막으며, 열매는 식수와 식량, 약재로 쓰인다. 또한 야자수는 전통 공예의 재료이자, 의식의 매개이며, 하늘을 향해 뻗은 신성한 존재다. 몰로카이의 성스러운 야자수 숲인 카푸아이와, 카우아이의 와일루아누이아호아노처럼, 야자수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깊게 연결되어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던 해변은 사뭇 다른 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늘어선 줄처럼 반듯하던 야자수들은 간헐적으로 비어 있고, 잎은 앙상하게 말라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호놀룰루 시내와 오아후 북부 해안에서는 속이 텅 빈 80그루의 야자수가 제거됐고, 2025년 6월부터는 800그루가 추가로 약제 처리되거나 베어지고 있다. 원인은 코코넛 코뿔소 딱정벌레(Coconut Rhinoceros Beetle, 이하 CRB)라는 작은 침입자다. 2013년, CRB는 오아후에서 처음 발견됐다. 광택 나는 등껍질과 날카로운 뿔을 가진 이 손바닥만 한 풍뎅이는 야자수 꼭대기의 생장점을 파고들어 갉아먹는다. 나무의 심장과도 같은 이곳에 피해를 본 나무는 새잎을 내지 못하고 점차 말라간다. 겉보기에 멀쩡해도 속이 텅 빈 채로 예고 없이 쓰러지는 경우도 잦다. CRB는 한 번 날면 최대 3.2km까지 이동할 수 있다. 여기에 감염된 녹색 폐기물이나 화분 흙, 나무 자재 등이 타섬으로 옮겨지며 확산이 가속화된다.
2025년 현재, CRB는 오아후와 카우아이를 넘어 마우이, 빅아일랜드, 라나이에서도 유충이 확인되었고, 몰로카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섬이 감염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는 방제가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피해는 나무 꼭대기 안쪽에서 발생해 눈에 잘 띄지 않고, 약제 살포는 해양 생태계와 꿀벌 같은 수분 매개자에게 해를 줄 수 있다. 개체 수가 많고 번식력도 높아, 현실적인 목표는 근절이 아닌 확산 지연일 수밖에 없다. 오아후를 중심으로 한 CRB 대응(CRB Response)팀은 유충 탐지견을 훈련하고, 그물 씌우기, 트랩 설치, 지역사회 교육 등을 통해 대응에 힘쓰고 있다. 주 의회도 2025년부터 연간 50만 달러의 예산을 신규 편성해 이 프로그램을 뒷받침 중이다. 관계자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확산을 늦추고, 사람들이 그저 야자수와 조금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쉽지 않은 이 싸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CRB의 위협은 단지 야자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하와이 유일의 토종 야자수인 룰루(Loulu)는 이미 멸종 위기종으로, CRB에 특히 취약하다. 타로, 빵나무, 사탕수수, 바나나처럼 공동체의 식량 기반이 되는 작물도 다음 피해 대상으로 우려된다. 침입종 확산으로 인해 약제 사용이 늘어나면, 곤충과 해양 생태계는 물론, 지역 주민의 건강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면 해안선을 지키던 식생이 사라지고, 기후 회복력 역시 크게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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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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