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전환점이 된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의 핵심은 바로 한화그룹이 올해 초 1억 달러를 투자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였다. 미국 필라델피아 해군기지 바로 옆에 위치한 이 조선소는 미국 해군 함정 건조 및 유지보수(MRO) 사업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한화그룹이 이번 협력안을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주요 민간 주체라는 판단이 협상단 전면 배치로 이어졌다. 필리조선소는 '마스가' 프로젝트의 물리적 기반이자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미국 내 생산' 기조와 정확히 부합하는 핵심 자산이었던 것이다.
김 부회장, 워싱턴까지 쫓아간 민간 외교관
김동관 부회장은 28일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해 한국 협상단에 합류했다. 그의 행보는 '민간 외교관'을 넘어 실질적인 협상 파트너 역할을 했다.
김 부회장의 미국 정계 네트워크는 협상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2기 행정부 외교·안보 책임자들과 환담을 나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때부터 이어진 미국 공화당 인사들과의 친분이 이번 협상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이번 주 내내 미국에 머물면서 정부 협상 상황에 따라 추가 투자 여부 등을 빠르게 결정할 전망이었다. 실제로 그는 한화필리십야드에 대한 추가 투자, 현지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방안 등을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의 전략적 투자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한화그룹이 1억 달러(약 1380억원)에 인수한 필리조선소가 1500억 달러(약 208조원) 규모의 한미 조선 협력 전용 펀드의 토대가 된 것이다.
협상 결과 미국은 한국에 부과하려던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3500억 달러 규모 펀드 중 1500억 달러가 조선업 전용으로 배정됐다.
한화오션, 미국 해군 MRO 사업 새로운 강자
한화의 미국 진출은 이미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한화오션은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MRO) 사업을 3차례 수주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이 원하는 해군력 증강을 한국 조선사가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은 조선 인프라의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1980년대에는 300개가 넘는 조선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20곳 이하로 줄었고, 그마저도 남은 곳의 생산 능력은 연 1~3척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미국 조선업 재건의 핵심 솔루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미 조선 협력은 미일 조선 협력보다 더 광범위한 수준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5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펀드의 일부를 조선소 건설에 투자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조선 협력 방안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조선업 기술력이 앞서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에서 협력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한화그룹의 필리조선소 인수와 MRO 사업 수주 실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을 앞선 한미 조선 협력
업계 관계자는 "필리조선소는 한화오션의 조선 기술과 한화시스템의 방산 IT 역량을 결합해 미국 시장이라는 '닫힌 문'을 연 전략적 결정"이라며 "단기적 변수보다는 미국 정부의 제조업 강화 기조와 맞물린 장기적 성장 스토리가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은 단순한 무역 협정을 넘어 한화그룹이 글로벌 방산·조선 시장에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역사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김동관 부회장의 리더십 하에 한화그룹이 '산업 외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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