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구조적이다. 서울아리수본부는 1994년 4월 이전에 건축된 노후 주택으로 아연도강관을 사용하는 건물을 대상으로 옥내 급수관 교체 공사비를 지원하는 ‘클린닥터’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표는 명확하다. 녹물의 주요 원인인 아연도강관을 교체함으로써 수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건축 진단을 통과했거나 사업을 준비 중인 단지의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철거될 건물에 수십억 원대의 급수관 교체 공사를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이중 고통을 당한다. 우선 녹물이라는 실질적인 수질 문제로 고통받는다. 아연도강관에서 발생하는 적색 산화철은 물을 녹색 또는 갈색으로 변색시키며, 이는 단순한 미관 문제를 넘어 건강 우려까지 초래할 수 있다. 동시에 심리적 스트레스도 크다. 재건축 사업이 장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녹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재건축은 일반적으로 수 년에서 십여 년까지 소요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주민들이 녹물로 인한 불편을 지속적으로 겪어야 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이다. 전면 교체를 추진하려는 측과 이를 반대하는 측 사이의 의견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면 교체에는 수십억 원대의 장기수선충당금이 필요하다. 이는 실질적으로 조만간 철거될 건물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주민들은 전면 교체에 반대하고, 녹물 피해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민들은 이를 강력히 주장한다. 이러한 갈등이 극심해지면 재건축 사업 자체가 취소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일부 단지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재건축 사업이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노연수 의원이 현장 밀착형 행정 안내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면서 선택의 폭이 좁다고 느낄 때 갈등은 심화된다. 오직 '전면 교체 하거나 안 하거나’라는 이분법적 선택지만 있다고 인식하게 되면 주민들의 좌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황을 세밀하게 설명하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행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의원의 입장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연수 의원이 제안한 것이 '징검다리 사업’의 보완과 확대다. 징검다리 사업은 재건축 완료 전까지 주민들의 녹물 피해를 임시로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구체적으로는 세대별 정수필터 지원, 공용배관 세척, 핀셋 보수 등 다양한 수준의 지원을 포함한다. 이는 전면 교체라는 극단적 선택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주민들의 실질적인 건강권을 보호하려는 접근이다.
서울아리수본부장의 답변에 따르면, 현재 이미 일부 지원 사업이 운영 중이다. 옥내급수관 전면 교체가 어려운 지역을 위해 배관 세척 비용의 최대 80%를 지원하고 있으며, 수도꼭지 정수필터 비용도 최대 9만 원 범위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연수 의원이 문제 삼는 것은 이러한 지원의 규모와 홍보다. 재건축 단지 주민들이 이러한 지원 정책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며, 지원 규모 또한 실질적 해결책으로 기능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대별 정수필터 지원의 확대도 중요한 대안이다. 정수필터는 개별 가정 내에서 즉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녹물이 발생했을 때 수도꼭지에 설치된 필터를 통해 직접적으로 수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간의 공사나 높은 비용 부담 없이도 주민들이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공용배관 세척 역시 단지 전체의 수질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아연도강관에 쌓인 산화물을 제거함으로써 녹물 발생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연수 의원의 이번 질의가 주목되는 이유는 문제를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녹물 문제는 수질 문제이면서 동시에 주민 갈등, 재정 부담, 사업 지연이라는 복합적 문제와 얽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뿐 아니라 주민 소통, 정책 다양화, 현장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원이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재건축 단지의 녹물 문제는 서울의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적 과제다. 현대화된 새로운 아파트로의 이주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그 과정에서 노후 인프라의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 동시에 이 문제가 주민 간 갈등으로 비화되어 재건축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노연수 의원이 강조하는 '징검다리 사업’의 확대와 현장 소통 강화는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을 인식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앞으로 서울시가 이러한 제안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지가 중요하다. 단지별 맞춤형 지원책 개발, 홍보 강화, 세대별 정수필터 지원 규모 확대 등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재건축 진행 중인 단지의 주민들이 겪는 녹물 불편과 갈등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에픽 이성수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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