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사장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수년 만에 받은 첫 연락이 바로 중보기도라니, 난 당황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머릿속에 흐릿한 조각들만 맞춰볼 뿐이었다.
“그거 알아요. 스무 살 때부터 내가 무엇을 꿈꿔왔는지?”
문 사장의 꿈은 한결같았다. 자신의 브랜드로 전국 백화점을 가득 채우고, 더 나아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꿈을 안고 살았다. 빨간 나비가 날갯짓하는 디자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나비처럼 화려하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망은 세월이 깊어질수록 단단해져 갔다.
스무 살 무렵 남대문시장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이후 해외를 오가며 사업가로 성장했다. 자체 브랜드를 들고 국내 주요 백화점에 입점했고, 중국을 넘나들며 활발히 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어느새 사업에는 하강기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문 사장은 멈출 수 없었다. ‘무모하다’라는 말이 주위를 맴돌자, 그녀의 딸 윤정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밀고 가는 건데, 뭐가 문제예요? 설령 사업이 망해도, 전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그 시절 그녀의 사무실은 서울역 근처 남대문 입구 골목 1층에 있었다.
사무실 유리창에 비친 문 사장의 실루엣은 머리를 감싸 쥔 모습이었다. 그녀의 고통이 그렇게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사업을 정리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빚을 처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힘겨워 보였다.
서울을 떠나던 날,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남대문시장 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힘없이 돌아섰던 순간은 아직도 선명하다. 가방을 든 어깨는 쓸쓸하게 야위어 있었다. 그때 문 사장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수년 전, 그렇게 비통하게 서울을 떠난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명랑한 목소리였다.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게 진 빚이 마음 한켠에 걸렸던 모양이다. 한편으로 반갑기도 했지만, 문 사장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나무랐다. 이제는 오롯이 편히 살기를 바랐는데….
정녕 문제는 나였다. 그 메시지를 받고 나는 깊은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문 사장과 얽힌 임 씨 때문이었다.
그녀의 사업이 위태로울 때, 그를 소개해 준 것도 나였다. 임 씨에게 문 사장은 아무런 보증 없이 물건을 넘겼다. 무보증은 전적으로 나 때문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임 씨는 물건을 판매한 뒤, 판매대금을 문 사장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왜 안 주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창고에 묶일 물건이잖아요.“
문 사장의 기가 막힌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업하면서 이런 ‘미친 짓’을 당한 것도, 처음이었고, 그런 ‘악마의 대답’을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꼭 그 일이라고 단정 짓지는 못하지만, 그 사건 이후 그녀는 심리적으로 눈에 띄게 흔들리며 무너져갔다. 당시 물에 빠진 그녀는 지푸라기 하나라도 필사적으로 잡아보려 했었는데, 그 지푸라기가 썩은 것임을 몰랐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도. 그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당하며, 자신의 ‘사업 운이 거기까지’라는 것을 직감했을 터였다.
이제부터는 내 이야기다.
그 사건은 가면 뒤 숨겨져 있던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민낯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낮은 의식의 임 씨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윤리는 인간성에 바탕을 둔 단어, 그는 윤리와는 동떨어진 존재였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다시 생각해도 그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다.
한때 그는 나를 구원해줄 동아줄로 여겼다. 그런데 그가 나를 힘들게 할 가시덩굴이 될 줄이야….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나는 당시 감탄하기도 했다. 그건 진실이 아닌 천박하고 피상적인 수사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일찍이 그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나의 인식의 부재, 무지를 탓할 따름이다.
그 사건을 거치며, 속고 속이는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고난도의 하드코어 게임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문 사장에게 그를 소개한 일과 그의 배신은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10년 넘게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를 전혀 몰랐다.
돌이켜보면 나는 단순 사고에 익숙해져 있었다. 모든 일에는 하나의 이유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단순 사고는 다른 다양한 가능성을 닫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임을 이제 알겠다.
충분한 정보 없이 단순 사고에서 내리는 결론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파괴적일 수 있다는 것도.
단순 사고의 정체는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삶의 에너지가 흩어지고 줄어들게 한다. 그것은 육체적 나태뿐 아니라 정신적 무력감과 감정적 무기력까지 포함한다.
게으른 마음은 악마의 장난감, 병든 자아와 같다. 나는 내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에 악마 임 씨와 공모자가 된 셈이다.
게으름은 가면 뒤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 무지는 바로 그 다른 이름이다.
인간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모르는 것은 무한하다. 그렇더라도 나는 그 한계 너머 그 무엇을 알아야겠다. 알지 못하면 삶은 허무해진다. 허무는 삶의 근원적 방향과 의미를 잃은 상태다.
“유일한 선은 앎이고 유일한 악은 무지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선악을 단순한 행동기준이 아니라, 진리를 아는 앎과 모르는 무지의 상태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나는 허무한 악인이었다. 알 수 없고 덧없는 삶에 갇힌, ‘무지의 허무’에 빠진 존재였다.
단순 사고에 머무르는 사람은 그저 생존할 뿐, 진정으로 살지 못한다. 모든 것을 왜소하게 만드는 생존에만 치중하는 자는 진정한 삶, 즉 위험한 삶을 살지 않기에 누구보다도 오래 산다. 니체가 ‘최후의 인간’이라고 부른 존재다. 최후의 인간은 안락을 좇는 게으름뱅이며, 초인(위버멘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이다.
중보기도 메시지를 받은 새벽,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입안 가득 박힌 털을 뽑는 꿈이었다. 그렇게 많은 털이 내 입속에 숨겨져 있는 줄 몰랐다. 털을 뽑아 방을 넘어 마루까지 길게 늘어뜨렸다. 입속 털을 뽑는 꿈은 ‘부정적 감정과 무거운 관계를 떨쳐내고 싶다’라는 내면의 투쟁이다. 그런 꿈은 처음이었다. 하루 종일 몸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그날 한밤중, 나는 비 내리는 개울가를 향했다. 비에 젖은 노란 개나리 한 무더기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촉촉이 피어 있었다.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노래했다.
나는 이제 분명히 안다. ‘위험스럽게 살지 않는 한 삶을 노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오래 사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최후의 인간’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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