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법원의 결정에 따라 26일 예정돼 있던 유상증자 대금 납입은 계획대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고려아연이 예정대로 신주 220만8716주를 발행하면서 프로젝트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74억3200만달러(약 10조9000억원)를 투자하여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2027년 착공해 2029년부터 순차 가동할 예정이다. 핵심 광물 11종을 포함한 총 13종의 금속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계획으로 있다.
경영권 분쟁의 핵심,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이번 논쟁의 중심에는 고려아연의 자금 조달 방식이 있다. 고려아연은 재원 마련을 위해 미국 정부와 함께 설립하는 현지 합작법인 크루서블JV에 약 2조851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를 통해 크루서블JV가 고려아연의 지분 10%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상법 418조 2항에 따르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허용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법원 판단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경영상 필요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영풍·MBK의 주장: "경영권 방어용 백기사"
영풍·MBK파트너스는 강한 반발 입장을 표명했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제련소 직접 투자가 아닌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택한 것이 "사업적 상식에 반하는 경영권 방어용"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최윤범 회장 개인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이번 유상증자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고려아연의 반박: "미국 정부와의 전략적 제휴"
반면 고려아연 측은 이번 투자가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합법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와 미국으로의 전략적 사업 확장을 위해 유상증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원. "경영상 필요성 인정"
법원은 양측의 주장을 신중히 검토한 끝에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크루서블JV를 통한 자금조달이 회사의 경영상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상법 규정에 따른 경영상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는 고려아연이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미국 정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경영상 실질적인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국방부와 상무부가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구조가 충분한 경영상 근거가 있다고 본 것이다.
변화하는 지분 구조와 경영권의 재편
이번 유상증자는 고려아연의 지분 구조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신주 발행 이후 의결권 기준으로 MBK·영풍 측 지분은 43.42%, 최 회장 측 지분은 18.76%로 각각 집계된다.
하지만 유상증자 이후 신설 합작법인의 고려아연 지분율이 11.21%로 추산되는 점이 주목된다. 탈중국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제련소 건설을 적극 추진하는 미국 정부의 성격상, 해당 지분이 최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기존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8.15%), LG화학(1.99%), 국민연금(5.08%)을 합하면 최 회장 측 지분은 총 45.53%로 MBK·영풍 측을 웃돌게 된다. 지분 경쟁에서 수세에 몰렸던 최 회장 입장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든 셈이다.
이사회 권력 구도의 변화
지분 구조의 변화는 이사회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 영풍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이사회는 최 회장 측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지분율에서는 MBK·영풍 측에 밀려 향후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유상증자로 양측 지분이 대등해질 경우,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MBK·영풍 측의 이사회 추가 진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 회장 측은 이를 바탕으로 경영권을 보다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정부의 투자 의미와 향후 영향
이번 거래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 정부의 직접 투자 참여다. 미국의 국방부(전쟁부)가 합작법인의 최대주주(지분 40.1%)로 참여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만약 미국 정부가 직접 투자에 참여하면 고려아연이 '미국의 안보 자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영풍·MBK 측이 시도하고 있는 인수합병(M&A)이 사실상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보안 검토(CFIUS) 등을 통해 경영권 변동이 철저히 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풍·MBK의 향후 대응 방향
영풍·MBK는 법원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지만, 법적 공방을 계속할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영풍·MBK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절차를 통해 제기됐던 기존 주주의 주주가값 훼손 가능성, 투자 계약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고려아연이 중장기적으로 부담하게 될 재무적·경영적 위험 요소들이 충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영풍과 MBK 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경영이 특정 개인이나 단기적 이해가 아닌, 전체 주주와 회사의 장기적 가치 극대화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제도적·법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영풍·MBK가 이의신청이나 즉시항고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7년 착공 2029년부터 상업 가동 돌입
법원의 결정으로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의 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 부지 조성에 착수해 2027년 본격 착공에 들어간다. 2029년부터는 단계적으로 상업 가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미국 정부가 행정·금융 지원을 약속한 만큼, 프로젝트 추진에는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제1위 비철금속 제련회사로서 고려아연의 전략광물 공급망 구축은 미국과 한국 양국의 핵심 광물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년 넘게 이어진 경영권 분쟁 ‘한 획’
이번 법원 판단은 지난해 9월부터 이어져온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서 최윤범 회장에게 유리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동안 최 회장은 이사회는 장악하고 있었지만 지분율에서는 영풍·MBK에 크게 밀려 있었다. 향후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정이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지분 구조가 재편되고,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는 한층 공고해질 전망이다. 미국 정부라는 강력한 우호 지분의 확보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최 회장의 경영 기반을 질적으로 강화시켰다고 평가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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