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제 자신의 감성에 맞는 연기를 찾은 것 같다. 진짜 여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송하윤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배우로서도, 개인으로도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
“이번 작품만큼은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완벽하게 괴롭히면서, 여타의 감정들을 잘 느끼지 못했어요. 1년 가까이 품고 있었던 수민을 조금씩 보내면서, 송하윤으로서의 감정을 되찾고 있어요. 악역을 마치고 나서 일시적인 권태가 사실 뭔가 신경 쓰지 않고 연기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느끼게 됐어요. 물론 악역 인상이 각인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캐릭터 모습으로 지워드리고자 해요.”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강지원(박민영 분)이 10년 전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살며 시궁창 같은 운명을 돌려주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연기 권태기를 느끼면서 다른 도전들을 원하던 시기였어요. 악역을 해보고 싶었던 상황에서 ‘내 남편과 결혼해줘’ 정수민 대본이 왔고 놓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물론 캐릭터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다양한 감정들을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도 없는 수민을 송하윤이 지키면서 열심히 살아줘야겠다 생각했어요.”
송하윤은 캐스팅 단계부터 예비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바. 그는 원작 속 인물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처럼 재현함과 동시에 극과 극의 감정을 유연하게 오가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냈다.
“전에는 해보지 않은 얼굴이다 보니 온전히 제가 저를 다 버려야지만 새로운 눈빛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전의 모습들이 제 발목을 잡고 저를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여태껏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사진들을 전부 다 지우기도 했어요. 원작을 처음에는 안 봤는데, 몰입이 잘 안돼서 웹툰을 살펴봤어요. 원작에 담긴 말투나 스타일링 등의 단순한 접근과 함께, 입체적인 심리감을 보여주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주로 밝고 귀여운 캐릭터를 연기한 송하윤은 항상 곁을 지켜준 친구 강지원의 모든 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정수민을 연기했다. 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강지원이 입원한 틈을 타 그의 남편과 뻔뻔하게 불륜 행각을 벌이는 캐릭터다.
“너무 복합적인 캐릭터라 지금까지와는 달리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어요. 그저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택하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은근히 마음에 걸렸어요. 정수민은 아무리 고민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어요.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를 완전히 이해해주지 못 한 것 같아 수민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거의 1년 동안 촬영했는데 일상에서 받는 모든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다 모아뒀다가 현장에서 끌어 썼어요. 송하윤의 불행을 끌어서 정수민의 행복으로 쓴 셈이었죠.”
송하윤은 맑은 눈망울에 생글생글 웃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비릿한 미소와 섬뜩한 눈빛을 드러냈다. 특히 미세하게 떨리는 동공, 눈썹, 입꼬리는 수민이 느끼는 불안, 분노, 절망 등의 복합적인 심리를 오롯이 전달해 감탄을 자아냈다.
“수민 캐릭터는 사람들과 물과 기름 같은 느낌이 있어요.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실제 너무 가까이 친분을 다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물론 대본호흡 할 때나 현장 주변에서는 송하윤으로서의 모습으로서 함께했어요. 출연한 배우 모두가 그렇게 몰입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제가 느끼는 감정들이 너무 버거워서 현장에서 저도 모르게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어요. 따로 노력할 필요도 없이 현장에서 박민환과 강지원에게 모진 말들을 들으면 저절로 너무 화가 났어요. 얼굴이랑 목이 고구마처럼 붉어지니까 열을 식힌 다음에 촬영을 들어간 적도 있고, 손이 너무 떨려서 제 옷을 붙잡고 연기하기도 했죠.”
러블리함 속 날카로운 질투심과 집착을 지닌 초반부부터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는 중반부 지점의 긴장감, 후반부의 막장급 빌런 연기까지 새로운 원작의 탄생으로 볼 법한 송하윤 표 정수민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정신적으로 초반에 힘들었어요. 개인성향과도 너무 안 맞아서 대본조차 넘기기 어렵고, 외워서 해야 할 정도였죠. 특히 1부 암병동 신과 함께, 집안에서 지원이 죽는 장면을 찍을 때는 정신적 충격이 엄청났어요. 아무리 연기라지만 직접 상황을 목격하니 알레르기가 날 정도였죠. 1부부터 이렇게 허우적대면 안 될 것을 알기에, 감성적인 접근을 해왔던 기존과 달리 철저히 이성적으로 캐릭터에 접근하고자 했어요. 수민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프로파일러나 정신과 의사분들과 만나 심리적인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접근하면서 송하윤으로서의 건강은 지켰어요.”
송하윤은 다채로운 착장과 헤어 아이템 등을 통해 수민의 생존 무기인 사랑스러움을 배가시키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스타일링이 캐릭터와 일맥상통했다. 송하윤은 수민과 강지원의 운명이 교차되는 시점부터 의상의 컬러를 비비드한 색상에서 블랙으로 점차 톤 다운시켰다. 또한 로맨틱한 무드의 코랄빛 메이크업은 누드톤으로, 화려한 웨이브 헤어는 스트레이트로 변화를 줘 몰락하는 수민을 비주얼적으로 완성했다.
“각 시점마다의 감정선에 맞게 표현들이 달라요. 쭉 비슷한 톤의 원작과는 달리 좀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한 오른쪽 얼굴이 좀 날카로운 편이라, 가르마 등의 헤어를 더해 강조하고자 했어요. 초반에는 나이에 맞지 않은 가벼운 컬러감과 말투, 스타일링에 접근했어요. 워크숍을 기점으로 결혼 직전까지는 하늘색, 네이비 톤의 중간적인 지점을, 이후에는 블랙톤의 기본적인 스타일링을 취했어요. 그와 함께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처럼 겉으로 표현되는 것에서 눈빛과 느낌으로 표현을 옮겨갔어요. 그것까지 더하면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러블리함부터 날카로운 블랙톤까지 이어지는 매력적인 스타일링과 함께 소위 ‘그라데이션 분노’라 할 법한 자연스러운 표정 전환이나 딱 부러지는 빌런 대사 등을 더한 과감한 불륜녀 연기는 얄미움을 넘어 경악을 느끼게 하는 서사전개와 함께 송하윤의 연기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열었다.
“현장에서의 느낌과 충격, 제가 가해야 하는 충격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게 아닐까 해요. 그를 계산해서 할 만한 기술은 제게 없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러한 표정들은 송하윤으로서의 불행들을 정수민의 행복으로 끌어다 쓴 결과물이 아닐까 싶어요. 드라마를 통해 좋게 잘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에요.”
첫 회 시청률 5.2%로 출발한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바로잡을 두 번째 기회를 얻은 주인공 강지원의 사이다 복수로 큰 호응을 얻었다. 3회 만에 작년 tvN 월화드라마 최고 시청률(5.9%)을 뛰어넘었고, 10회 만에 시청률 10%대를 돌파했다.
“반응을 직접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지인들의 연락이 꽉 채워져서 드라마를 정말 많이 보는구나 싶었어요. 주변이나 팬들이 제가 잘돼서 기쁘다고 함께 즐거워해주세요. ‘내 딸, 금사월’, ‘쌈, 마이웨이’ 등에 이어, 이번에도 제 연기를 잘 봐주신다는 말도 주변에서 해주세요.”
올해 만난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배우로서의 도약점이 됐다. 시청자들은 송하윤의 몰입도 높은 연기와 인형 비주얼에 빠져들었고, ‘송하윤이 아닌 정수민은 상상할 수 없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그저 38세의 기억이에요. 열심히 캐릭터의 모습으로 살아내는 것이 연기자로서의 예의라 생각해요. 그를 잘 봐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또한 그러한 모습으로 과거의 작품들이 회자되는 것도, 연기를 더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연기, 그 자체가 너무 좋아요. 모두가 각자의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찍 성공하는 남들을 보며 성내봤자 저만 괴로울 뿐이니 그저 건강히 지내다가 기회가 왔을 때 잘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진 제공 = 킹콩 by 스타쉽]
유병철 글로벌에픽 기자 e ybc@globalepic.co.kr/personchos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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