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박민영에게 각별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박민영은 작년 초 옛 연인 강모 씨의 횡령·배임 의혹 사건으로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며 구설에 올랐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논란 이후 처음 출연한 드라마였다.
“저와 관련된 여러 논란에 대해 직접 말씀드리는 게 가장 솔직하고 저답다고 생각했어요. 잠시 아프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바닥도 쳐봤는데 이런 인터뷰 자리는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 중 하나죠.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제가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죄송해요. 제가 실수한 건 맞아요. 하지만 한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가 조금이라도 더 잘못한 게 있었다면, 어떤 조치가 더 있지 않았을까요. 이 작품은 어쩌면 약간 들떠있을 수 있었던 제게 초심을 돌이키고, 많은 치유를 준 작품이에요.”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강지원이 10년 전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살며 시궁창 같은 운명을 돌려주는 이야기다.
“대본을 받고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지만, 글이 너무 재밌었어요. 시청자분들에게도 재밌는 자극이 될 것 같아서 이번 드라마를 선택했어요. 제가 겪었던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계신 분들이 드라마를 통해 잠시나마 활기를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연기했던 작품이었죠. 저는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은 많이 외로움을 타는 편이에요. 그 때문인지 ‘나는 항상 배를 타고 있는 느낌. 안정되게 땅을 한 번 밟고 서있고 싶다’라는 대사처럼 지원의 외로움에 동질감이 느껴졌어요. 또 2회차 메이크오버 상태로 거울을 보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꽤 많이 눈물을 흘렸어요. 깨달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 1회차 지원에게서 저를 발견하게 됐고,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를 극복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극 중 박민영은 남편과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주인공 강지원을 연기했다. 경악할만한 37kg 체형의 암 환자 모습부터 2회차 회귀와 함께 펼쳐지는 완벽한 스타일링 변신을 통해 회귀물의 판타지 감각을 온전하게 보여줬다.
“과거에는 4부, 2부, 지금은 1부 내 20분 내에 사로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감정선을 따르기 힘들고, 몰입감을 줘야 해요. 또한 암 환자라는 설정 자체에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대본설정에 충실히 따르면서 운동으로 준비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건강해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극단적인 방법으로 뺐어요. 이온음료 없이 쓰러질 정도로 뺐기에, 사람으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상태였어요. 절대로 다시 하고 싶지도, 추천하고 싶지도 않아요. 과감한 스타일링 변화는 2회차 강지원의 드라마틱한 변화에 있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긴 머리를 푼 채 파운데이션만 해서 완벽하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죠. 그것까지는 괜찮았는데, 2013년 트렌드였던 레오파드, 가죽스키니, 페도라 등 여러 가운데서 오프숄더를 택했고, 그게 좀 과하게 나왔어요. 2회차 박민영일 때 예방주사룩을 택하기 전으로 돌아가고도 싶어요.”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바로잡을 두 번째 기회를 얻은 강지원은 참고 견디기만 했던 과거를 후회하며 크게 각성한다. 받은 만큼 시원시원하게 되갚아주기 시작하고, 점점 주체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며 행복을 찾아 나선다.
“인생 2회차에서 건강하고 통쾌한 사람이 되려는 강지원처럼 저도 그렇게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욕심이 들었어요. 그렇게 살아내는 제 모습을 보면서 다른 분들도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죠. 2회차로 돌아오기까지 실질 시간차는 10년이지만, 지원의 삶에서는 단 하루차이에 불과해요. 그 가운데서 내면의 지원도 충돌한다고 생각했어요. 답답한 1회차 지원과 달라지고 싶어 하는 2회차 지원의 차이를 표시해두고 그 감정선의 전환들을 조금씩 속도를 높이면서 연기했어요. 그러한 모습들이 처음 수민 앞에서의 떨림을 시작으로 점차 2회차 지원의 당당함까지 이어지죠. 그렇게 하면 갑작스러운 변화에 따른 어색함보다 한결 자연스러운 몰입을 이끌 수 있어요.”
과거와 현재 시점을 오가며 쓰레기 남편 박민환(이이경 분), 불여우 절친 정수민(송하윤 분)을 상대로 한 완벽한 복수서사와 함께, 인간적인 정서와 주체성 회복의 면모들을 정서적으로 촘촘히 보여줬다.
“20년 가까이 연기하면서 이렇게까지 말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처음 말하는 단어들이 많았어요. 그 덕분인지 어떤 쇼츠에서는 켜켜이 쌓인 정서 없이 보게 되면 민환이나 수민에게 복수하는 악역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덕분에 지원의 독기어린 사이다가 제대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재밌기도 새롭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연기자들의 자유로운 케미를 유도하는 성향이셨어요. 원래 대본에 없던 것이라도 연기합에 필요한 애드리브나 동선을 적극 받아들여주셨어요. 그러한 가운데 이이경과 함께하는 신 대부분 크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둘 다 시트콤 출신이라 그런지, 리허설과 함께 많이 걷어내고 편집해야할 정도로 아이디어들도 많이 나왔어요. 그렇게 모두가 친밀해진 가운데서 촬영을 하다 보니 더 재밌게 신들이 나온 것 같아요. 송하윤과 처음 어색했을 때와 좀 더 친해졌을 때의 분위기가 좀 달라요. 가짜로 하면 짐짓 유치해질 수 있기에, 서로 예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진심으로 연기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두피 가까이 잡고 사이에 껴서 확 당기면 안 아프다는 노하우를 전해 듣고, 회사 워크숍신에서 제대로 표현했어요.”
여기에 조력자 격인 유지혁(나인우 분)과의 로맨스 서사는 물론, 양주란(공민정 분), 유희연(최규리 분)과의 시스터즈 케미를 통해 당당한 여성서사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흔히들 ‘워맨스’라고 하더라고요. 밝고 건강한 에너지의 희연, 지원에게 언니가 돼준 주란 등 그들의 에너지로 인해 지원 스스로의 어려움을 딛고 복수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지점들이 현장에서도 잘 나타났어요.”
첫 회 시청률 5.2%로 출발한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통쾌한 사이다 복수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3회 만에 작년 tvN 월화드라마 최고 시청률(5.9%)을 훌쩍 뛰어넘었고, 10회 만에 시청률 10%대를 돌파했다. 또한 7주 연속 화제성 1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TV쇼 부문 차트 최상위 등의 성과로 연결되며 박민영의 새로운 전성기라는 평가를 이루고 있다.
“시사회 단계까지도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할 정도로 기대작 단위는 아니었어요. 한국적인 톤의 정서와 한, 가스라이팅 등의 소재가 결합돼 있는 새로운 결의 막장극은 될 수 있어도 이 정도까지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남녀노소 모두의 가정사와 경험으로 이입되는 매력들을, 해외에서는 '두 번째 기회'라는 희망적인 이야기, K콘텐츠 특유의 시원함과 속도감이 주목받은 것 같아요.”
2006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한 박민영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영광의 재인’, ‘힐러’, ‘7일의 왕비’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주연으로 활약했다. 최근에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그녀의 사생활’,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등에 연달아 출연했다. 박민영은 캔디 캐릭터를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제 안에 어떠한 한이 있는 것 같아요. 10대 후반부터 연기를 해오면서, 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데 따른 자기연민과 번아웃 등을 기억했다 쓰는 스타일이라 생각해요. 이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최근 2년간의 긴 동굴을 지나면서 쌓인 감정들을 쓴 것 같아요.”
대중의 뇌리에 박힌 이미지는 어떤 의미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일 수 있다. 박민영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차근차근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각오를 다졌다. 해외에 진출하고픈 욕심도 있다.
“언제나 다른 장르에 대한 욕심은 있었는데, 로맨스 대본이 제일 많이 들어왔어요.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들이 강지원보다도 더 주체적이더라고요. 현재 차기작을 논의 중인데, 로맨스 없는 박민영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배우로서 해외에 나가보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도 늦지 않은 것 같아서 시도해보고 싶어요. 실제로 오디션도 여러 개 봐볼 생각이에요.”
[사진 제공 = 후크엔터테인먼트]
유병철 글로벌에픽 기자 e ybc@globalepic.co.kr/personchos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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