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라이선스의 두 얼굴
F&F가 거대해진 경로는 라이선스 사업으로 일관되어 있다. 1992년 창업한 후 베네통·시슬리·레노마 등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며 기반을 다졌고, 1997년 미국 메이저리그(MLB)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라이선스는 원소유자의 브랜드 가치에 편승하면서 그들이 만들어둔 인지도를 즉시 활용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실제로 F&F는 이 전략으로 국내 패션업계에서 놀라운 성과를 냈다. MLB는 중국 진출 이후 특히 두드러진다. 2020년 중국 진출 이후 F&F는 MLB를 현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전개했고, 그 결과 올해 중국 매출만 1조1000억원대에 이르렀다. 미국 MLB 본사가 직접 중국에 진출한 것도 아닌데, 라이선스 사업자인 F&F가 만들어낸 성과다. 현재 중국 매장은 900개대에 달한다. MLB는 F&F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며, F&F가 1조원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라이선스 사업의 구조적 한계는 명확하다. 매년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고, 원소유자와의 계약이 만료되면 사업 기반 자체가 사라진다는 리스크를 항상 안고 간다. 또한 카테고리 확대나 지역 확장도 계약 범위에 따라 제약된다. 김창수 회장이 듀베티카(2018년 인수), 수프라(2020년 인수), 세르지오 타키니(2022년 인수) 등 주요 브랜드의 IP를 차례로 인수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라이선스에만 의존하는 포트폴리오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로에 선 디스커버리 디스커버리는 2012년 F&F가 런칭한 이래 독특한 위치를 점해왔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기능성 중심이던 시절, F&F는 일상복과 아웃도어를 결합한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감성적이고 트렌디한 아웃도어로 포지셔닝하면서 젊은 고객층을 확보했다.
그러나 성장세는 한계에 닿았다. 국내 매출은 2022년 4915억원을 정점으로 2023년 4645억원, 2024년 4325억원, 2025년 3538억원으로 3년 연속 감소했다. 3년 사이 28%가 줄어든 것이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노스페이스와의 경쟁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으며, 소비자들 사이에서 브랜드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다는 신호다.
반면 해외는 다른 모습이다. 2024년 7월 F&F가 중국, 일본, 대만, 홍콩,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독점 라이선스를 확보한 후, 중국 상하이에서 본격 운영을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노출이 많았던 탓에 인지도가 낮아진 디스커버리가 중국에서는 오히려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는 MLB의 중국 성공 모델과 놀랍게도 유사하다. MLB도 한국에서 포화된 후 중국에서 새로운 성장축을 찾았고, F&F의 현지화 전략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김창수 회장이 디스커버리의 글로벌 IP를 인수한 것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디스커버리를 '제2의 MLB'로 키우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자산총액 4.27%의 무게
투자 규모 측면에서는 상당한 결단이다. 하지만 F&F의 전략적 계산은 분명하다. 라이선스 계약으로 지급해온 로열티 비용 부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F&F가 디스커버리를 통해 올리는 매출에서 로열티로 나가던 몫이 고스란히 영업이익으로 전환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1132억원이라는 투자금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향후 수년 내에 절감될 로열티 누적액만으로도 충분히 회수 가능한 수준의 고효율 투자라는 계산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상표권 소유가 브랜드 자산의 성격을 영구히 바꾼다는 점이다. 라이선스 브랜드인 'MLB(MLB키즈 포함)'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라이선스 사업은 원소유자와의 계약이 만료되면 브랜드까지 반환되어야 한다. 반면 이번 인수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F&F의 영구적 자산이 된다. 계약 종료 리스크에서 벗어나고, 중장기 투자와 브랜드 육성의 자유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허용되는 확장, 개방되는 가능성
IP 인수로 가장 큰 변화는 사업 확장의 자유도가 급격히 높아진다는 점이다. 기존 라이선스 계약에서는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의 계약 범위 내에서만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지역도 한정되었고, 상품 카테고리도 제약이 있었다.
이제 F&F는 단독 결정권을 가진다. 이미 인수 대상에는 패션 관련 상표권뿐 아니라 화장품·도메인·SNS 계정·마케팅 저작물이 포함되어 있다. 건강기능식품·비타민제·비알코올음료·에너지드링크 등으로 상표를 확장할 권한도 확보했다. 이는 MLB처럼 단순 의류 브랜드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도약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F&F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디스커버리는 기존의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액티브 웰니스' 분야로 확장한다. 일상복 기능성을 강화하면서 야외 활동을 넘어 일상 전반의 움직임을 지원하는 브랜드로 진화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의류에만 국한되던 사업 영역을 건강·웰니스 전반으로 확대하려는 포부를 보여준다.
지역별 전략의 분화
F&F는 이번 인수를 계기로 국가별로 차별화된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노스페이스와의 경쟁에서 밀린 디스커버리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젊은 소비층을 다시 끌어당기기 위한 마케팅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는 MLB의 경험을 활용한 적극적인 출점과 현지화 전략을 추진한다.
특히 중국은 디스커버리의 성장 기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MLB가 보여준 것처럼,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 브랜드의 감성과 기능성을 선호한다. F&F가 중국에서 추진 중인 디스커버리 매장 확대도 이러한 시장 확신을 반영한 것이다. 디스커버리의 라이프스타일 컨셉이 중국의 도시 소비층에 어떻게 조응할지가 관건이다.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가정들
그러나 이번 인수가 자동으로 성공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넘어야 할 현실적 과제들이 있다.
먼저 시장 환경이 2020년의 MLB 진출 당시와 다르다. 중국 경제가 침체 우려에 직면하고 있으며, 글로벌 아웃도어 시장에는 이미 수많은 경쟁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다. 노스페이스·컬럼비아·살로몬·아크테릭스 같은 글로벌 거대 브랜드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디스커버리가 MLB와 달리 명확한 원산지가 있는 브랜드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한다. 야구 문화와 국가 이미지를 활용하는 MLB와 달리, 디스커버리는 '한국 발생 아웃도어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할지가 중요하다.
국내 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3년 연속 매출 감소는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니라 브랜드 라이프사이클의 하강 국면을 나타낼 수 있다. 국내에서 브랜드 가치를 재정의하지 못하면 해외 시장에서도 브랜드의 강도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거버넌스 검증이 남겨진 숙제
더불어 시장과 소액주주들이 주목하는 부분이 있다. 자산의 4%를 넘는 대규모 해외 IP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사회가 충분한 검토를 수행했는지, 투자 타당성과 무형자산 가치 평가를 얼마나 실효성 있게 검증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F&F의 이사회는 8월 13일 이번 인수를 승인했으나, 시장은 대규모 투자 결정의 투명성과 거버넌스 실효성을 함께 평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오너 중심 경영 구조의 상장사인 만큼, 개인회사 에프앤코와의 이해관계가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도 평가 대상이 될 전망이다.
투자의 정당성을 묻는 시간
F&F가 1132억원을 들여 확보한 것은 단순히 상표권이 아니라, 라이선스 사업자에서 글로벌 IP 소유자로의 전환을 위한 '입장권'이다. 이를 통해 로열티 부담을 제거하고,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중장기적 성장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는 명확하다.
다만 MLB의 성공이 디스커버리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시장의 기대는 높지만, 검증은 아직 시작 단계다. F&F는 향후 2~3년 내에 중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야 이번 투자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다. 매장 수 확대와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 강화와 매출 증대라는 동시 과제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결단이 '제2의 MLB'로 가는 도정인지, 아니면 라이선스 브랜드의 한계를 극복하려던 시도가 무산되는 모습인지는 향후 실행력에 달려 있다. 김창수 회장의 브랜드 사업가로서의 내공이 다시 한 번 시장에서 검증받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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