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다만 한화의 KAI 지분 확보는 아직 인수나 경영권 확보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한화의 현 지분만으로는 KAI 경영 전반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준의 지배력이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화가 글로벌 톱10에 진입하려면 지분 확대 여부뿐 아니라 항공 플랫폼, 발사체, 위성, 해양방산, AI 지휘체계의 실질적 통합과 해외 수주 확대가 함께 증명돼야 한다.
전체 매출서 방산 비중 20% … 핵심 성장 엔진 부상
미국 국방 및 안보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가 지난 8월 31일 발표한 2026 방산기업 톱100에 따르면, 한화는 2025년 방산매출 기준으로 104억3763만8339달러를 기록해 16위에 올랐다. 이는 2024년 방산매출 기준 순위인 22위에서 6계단 상승한 결과다. 방산매출의 증가 속도도 가팔랐다. 2024년 68억1734만7000달러에서 1년 만에 36억달러 이상 늘어나 53.1% 증가했다. 한화의 전체 매출에서 방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20% 수준으로, 방산 사업이 회사의 핵심 성장 엔진이 됨을 보여준다.
한화의 급속한 성장 배경에는 지상 무기체계의 수출 호조와 함께 조선·방산·우주로 이어지는 계열사 포트폴리오 확장이 있다. 국내 방산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함께 약진했다. LIG넥스원은 2025년 방산매출 30억2923만달러로 전년 53위에서 52위로 한 계단 올랐다. 현대로템은 K2 전차 등 지상 무기체계 수출 호조 속에 67위에서 61위로 6계단 상승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74위에 머물렀지만, 4개 기업이 함께 글로벌 톱100에 진입한 것 자체가 한국 방산업의 저력을 드러낸다.
이미지 확대보기한화의 급속한 성장 배경에는 지상 무기체계의 수출 호조가 있다.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은 우크라이나·폴란드·루마니아 등 나토 회원국과 중동 지역에서 수요가 지속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요 수익원이 됐다. 여기에 조선 사업의 연결 편입과 한화시스템의 센서·레이더 납품이 더해지면서 그룹 차원의 방산 사업 규모가 빠르게 확대됐다.
다만 디펜스뉴스의 방산매출 104억달러는 개별 제품이 아닌 한화 그룹 전체의 집계다. 회사별 공시 기준과 계열사 포함 범위가 기관마다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K9 수출 증가량을 단순히 순위 상승분으로 귀속시키기보다는 '지상·해양·항공우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트폴리오가 확장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한화가 글로벌 순위에서 한 자리를 크게 뛸 수 있었던 것은 단일 무기 시스템의 성공이 아니라, 방산 생태계 자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보기한화가 최근 추진한 KAI 지분 확보는 이러한 포트폴리오 확장 전략의 정점에 해당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 등 한화 계열 3개사는 지난 8월 31일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아 KAI 지분 15.89%를 확보했다. 내역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9.90%, 한화시스템 4.98%,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 1.01%다. 한화는 KAI의 최대주주인 수출입은행(26.41%)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러나 현 단계는 아직 경영권 확보 단계가 아니다. 공정위는 한화 측 지분만으로는 KAI 경영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대주주인 수출입은행과의 지분 격차가 10%포인트 이상이고, 국민연금공단(8.75%)을 포함한 정부 측 지분율이 35.16%에 달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한화가 향후 지분을 더 확대하거나 임원 겸임 등으로 지배력을 강화할 경우 새로운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겠다고 명시했다.
KAI 단독으로는 톱10 진입 어려워
다만 숫자로 본 시뮬레이션은 현실을 간단히 보여준다. 2025년 기준 한화와 KAI의 방산매출을 단순 합산하면 약 123억달러다. KAI의 방산매출이 18억6262만달러였기 때문이다. 이 규모는 현 순위표상 14위 수준에 해당한다. 13위 HII(헌팅턴 잉갈스)의 123억0100만달러와는 불과 74만달러 차이에 불과하지만, 10위 에어버스의 151억2415만달러와는 여전히 28억달러 이상 격차가 난다.
더 주목할 점은 KAI의 순위 추이다. KAI는 2024년 방산매출 기준 62위에서 2025년 방산매출 기준 74위로 8계단 하락했고, 방산매출도 19억3762만달러에서 18억6262만달러로 감소했다. 한화의 톱10 진입이 KAI 지분 확보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KAI는 한화의 항공우주 역량 부족을 채울 전략적 자산이지만, 자체 실적 회복이 동반돼야 한다.
글로벌 대형화 추이와 한화의 선택
미국과 유럽 방산업계는 이미 대형화 길을 걸었다. 미국에서는 1995년 록히드와 마틴마리에타의 합병을 시작으로 방산기업들의 인수합병이 진행되어 현재 록히드마틴·RTX·제너럴다이내믹스·노스럽그러먼·보잉·L3해리스 등 소수의 대형사로 집중됐다. 유럽도 프랑스 아에로스파시알, 독일 DASA, 스페인 CASA가 2000년 통합해 EADS를 만들었고, 이는 훗날 에어버스로 발전했다.
한화가 지향하는 대형화는 단순한 매출 합산이 아니다. 지상 무기체계, 해양 플랫폼, 항공기 부품·엔진, 위성·통신, 발사체, 국방 AI를 하나의 수출 패키지로 묶는 데 있다. 글로벌 방산 수출이 개별 무기 판매에서 현지 생산, 유지·보수·정비(MRO), 탄약, 위성·통신, 지휘통제 체계까지 포함하는 장기 사업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판 스페이스X'라는 표현이 단순한 우주 사업만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미지 확대보기55조원이 말해주는 장기 승부
한화가 2040년까지 우주항공과 AI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55조원 규모는 이러한 전략의 규모를 보여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독자 발사체 개발에 약 23조원을, 한화시스템은 초저궤도 관측위성, 우주 AI 데이터센터, 저궤도 위성통신망 구축에 약 2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창원에 건설할 국방 AI 데이터센터는 2032년까지 135MW 규모로 확장되며, 방산 지휘체계부터 무인기·해양전력까지 한국형 국방 AI 모델 'Defense OS' 개발을 주도할 예정이다.
한화의 구상에 따르면 영남권 창원·사천·고흥·제주를 연결한 우주항공 산업벨트가 완성되면, 한국은 우주 발사체 자주권과 전역 통신·감시 위성망을 갖춘 국가가 된다. 이를 다시 방산 무기체계와 연결한다면 글로벌 방산기업 수준의 통합 솔루션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순위 자체의 도약보다는 장기적 실적 개선을 겨냥한 것이다.
다음 승부의 변수들
한화가 글로벌 톱10에 진입할 수 있는가는 몇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 첫째는 KAI와의 실질적 결합 여부다. 공정위 재심사를 거쳐 경영권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KAI 노조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둘째는 K9·천무 등 지상 무기체계의 수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수요를 늘리지만, 지역 분쟁의 해결은 수주를 감소시킬 수 있다.
셋째는 우주·AI 투자의 상업화 시간표다. 2040년까지의 55조원 투자는 15년에 걸친 계획이다. 국내 수요보다 해외 고객 확보가 중요한데, 미국 SpaceX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와의 경쟁이 심화되면 기술 개발 속도나 사업성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넷째는 해양방산 사업의 성장이다. 조선 관련 사업은 개별 국가 사업에 의존하는 특성이 있어, 안정적인 수주처 확보가 과제다.
16위에서 시작된 긴 여정
한화가 글로벌 방산 16위에 올랐다는 것은 분명한 성과다. 다만 이는 한화가 톱10에 진입하겠다는 목표의 출발점일 뿐이다. 한화보다 한 단계 높은 13위 HII와의 거리, 10위 에어버스와의 매출 격차, 아직도 형성되지 않은 KAI와의 지배관계, 글로벌 경쟁 속에서 실현해야 할 우주 자주권의 과제들이 앞에 남아 있다.
한화는 이제 덩치 키우기 단계를 벗어나 통합 시스템으로서의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
K9 자주포 한 대의 수출이 아니라, 지상·해양·항공·우주를 아우르는 방산 패키지를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KAI와의 실질적 협력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우주 인프라 구축이 얼마나 빨리 진행되는지, 국방 AI 기술이 실전에서 얼마나 효용성을 입증하는지가 한화의 다음 도약을 결정할 변수가 될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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