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2025년 들어서도 BMW의 우위는 더욱 확고해졌다. 3분기(1~9월)까지 누적 판매량에서 BMW는 약 57,840대를 기록하며 벤츠(약 48,300대)보다 9,540대 앞선 상태다.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후 3년차에도 계속되는 우위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판매량의 변화를 넘어, 한국 자동차 시장의 소비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브랜드의 명성만으로 선택 받지 못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BMW와 벤츠의 경쟁은 기술력과 신뢰, 혁신성,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30년의 진심: BMW의 한국 시장 전략
현지화를 넘어 동반자로의 위치 확보
BMW의 한국 시장 성공의 시작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MW는 당시 한국 수입차 시장이 연간 6,910대 수준으로 매우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본사가 100% 투자한 BMW 그룹 코리아를 설립하며 한국 수입차 업계 최초의 현지법인으로 진출했다. 첫해 판매량은 714대에 불과했지만, BMW는 한국 시장을 단순한 판매처가 아닌 전략적 핵심 시장으로 인식했다.
이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BMW의 행동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많은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했을 때, BMW는 한국 법인을 유지했다. 2000년에는 외국 기업 중 최초로 한국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고, 1996년 인천에 부품 물류 센터를 설립한 이후 2017년에는 안성에 1,300억 원을 투자해 BMW 해외 법인 중 세계 최대 규모의 부품 물류 센터를 구축했다.
특히 2014년 아시아 최초의 BMW 드라이빙 센터를 영종도에 설립한 것은 상징적이었다. 이는 BMW 본사가 한국 시장을 아시아의 핵심 시장으로 본다는 강력한 시그널이었으며, 이러한 진정성 있는 투자는 성과로 이어졌다. 2002년 연간 5,000대, 2011년 수입차 최초로 2만 대, 2017년 59,000대라는 놀라운 판매 성장을 기록했다.
‘불자동차’ 오명과 절망적인 상황
2018년은 BMW에게 가장 힘든 한 해였다. 전국적으로 BMW 차량에서 원인 미상의 화재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BMW는 순식간에 "불자동차"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주차장에서는 BMW 차량이 쫓겨나갔고, 소비자들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판매량도 급감했다. 벤츠가 반사이익으로 판매량이 증가할 때, BMW의 월간 판매량은 2,000대도 넘지 못했다. 한국 시장에서의 회복 불가능 판정이 내려지는 분위기였다. 자동차 업계는 BMW가 한국 시장을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제시했다.
이미지 확대보기신뢰 회복에 집중 – 소비자 불안해소 주력
하지만 BMW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BMW 경영진은 기술적 결함보다 무너진 신뢰가 더 큰 문제임을 인식했다. 단순히 리콜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집중했다.
2020년의 5시리즈 월드 프리미어는 BMW의 진정한 변화의 신호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부산 모터쇼가 취소된 상황에서도 BMW는 5시리즈 월드 프리미어를 한국에서, 그것도 영종도 드라이빙 센터에서 세계 최초로 개최했다. 이는 한 번의 마케팅 이벤트를 넘어, BMW가 한국 시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 맞춤형 설계였다. 5시리즈의 전 세계 판매량 중 약 20%가 한국에서 팔리는 주요 시장이었지만, 주력 차종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데뷔시킨 하이엔드 브랜드는 BMW가 최초였다. 큰 차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 전장과 2열 공간을 더 넓히는 한국 맞춤형 설계를 적용한 것이었다.
5년 보증 정책 – 신뢰회복 핵심 무기
결정적이었던 것은 보증 정책의 변화였다. 기존 3년/20만 km 보장에서 벗어나 5년 보장을 기본으로 하는 워런티 플러스 보증 연장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었다. 화재 사건으로 불안했던 소비자들에게 "문제가 생겨도 끝까지 책임진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는 브랜드 신뢰 회복의 핵심 무기가 되었다.
2024년 BMW 드라이빙 센터 10주년을 맞아 진행된 대규모 리뉴얼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 센터는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고객이 BMW의 철학과 가치를 직접 경험하는 공간이 되었고, 브랜드 이미지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판매량이 반등했다. 2019년 약 4만 대 수준에서 2020년부터 급상승했고, 때마침 벤츠의 이미지가 하락하면서 두 브랜드의 격차가 급속도로 좁혀졌다.
벤츠의 추락: 이미지 위기가 판매로 이어지다
신뢰 기반이 무너진 순간
벤츠는 오랫동안 한국 수입차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고급스러움"과 "안정감"의 상징이었으며, 슬로건은 "최고의 차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였다. 그러나 이 신뢰는 빠르게 무너졌다.
2023년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는 벤츠에게 치명적이었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이후 드러난 사실들은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1억 원이 넘는 고급차에 중국 파라시스의 저가 배터리(업계 12위)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벤츠는 배터리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최고만 추구하는 브랜드"가 저가 배터리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워했다.
추가적인 불만도 있었다. 통풍 시트, 열선 핸들, 후륜 조향 등 기본 기능들을 옵션 구독 서비스로 판매하는 정책도 소비자들의 반감을 샀다. 서비스 센터에 대한 불만도 쌓여갔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가치와 소비자 경험 사이의 불일치가 명확해지면서, 벤츠의 브랜드 이미지는 흔들렸다.
이미지 확대보기세대 초월한 선호: 모든 연령층을 사로잡은 BMW
2030세대의 압도적 지지
BMW의 승리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2030세대에서의 지지가 특히 두드러진다. 2019년만 해도 BMW와 벤츠가 2030세대 판매량에서 비슷했으나, 2023년에는 BMW가 벤츠보다 두 배나 더 많이 팔렸다. 젊은 세대는 BMW를 수입차 입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벤츠 전통 강세층도 옮겨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벤츠의 전통적인 강세층인 4050, 5060세대에서도 BMW의 점유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연령대에서 BMW에 대한 선호가 확대되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 사회의 소비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에는 수입차라는 이유만으로 럭셔리로 인식되었으나, 경제적 부유함과 2030세대의 구매력 증가로 인해, 소비자들이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꼼꼼하게 따지게 된 것이다.
‘합리적 사치’의 시대 - 수입차 시장 새로운 기준
차량 선택 기준이 바뀌었다
이제 수입차 구매의 기준이 ‘합리적인 사치’로 변했다. 더 이상 단순히 고급스러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비자들은 투명한 가격 정책, 책임감 있는 서비스, 신뢰할 수 있는 기술력을 요구한다. 예상치 못한 비용 부담, 화재와 같은 안전 문제, 기술 결함을 은폐하는 듯한 행동들은 모두 이러한 새로운 기준에 어긋났다.
BMW가 한국 시장에 보여준 진심 어린 투자, 적응력,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의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행동들이 바로 이 새로운 기준을 충족시켰다. 한국 맞춤형 설계, 연장된 보증 기간, 문제 발생 시 신차 교환과 같은 정책들은 모두 비용이 드는 결정이었지만, 이것이 장기적인 신뢰와 충성도로 이어졌다.
이제 수입차 브랜드는 이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생존할 수 있다. 벤츠 역시 2027년까지 전례 없는 18종의 신차를 출시하겠다고 예고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 잃은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BMW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이미지 확대보기신뢰와 혁신이 만드는 새로운 시대
지속되는 BMW의 우위
2025년 9월까지의 누적 실적은 BMW의 우위가 더욱 확고해졌음을 보여준다. BMW는 전년 동기 대비 6.6% 증가라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시장 전체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BMW만의 전략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BMW가 지속적인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배경에는 세 가지 핵심 요인이 있다. 첫째, 전동화와 전통 내연기관을 모두 갖춘 폭넓은 라인업으로 변화하는 소비자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둘째,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세련된 마케팅과 라이프스타일 제안으로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했다. 셋째, 2018년 화재 위기 이후 쌓아온 신뢰와 책임감 있는 대응이 브랜드의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4년 BMW의 판매량 확대를 이끈 주역은 5시리즈로, 올해 1~11월 동안만 18,947대가 팔려 BMW 전체 판매량의 28%에 달했다. 2025년도 이 추세는 계속되고 있으며, X5, 3시리즈, X3 등 다양한 모델들이 고르게 판매를 견인하고 있다. 특히 BMW 5시리즈는 1995년 국내 출시 이후 30만 대 가까이 판매되며 베스트 셀링 모델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수입차 시장의 새로운 기준
더 이상 럭셔리 수입차 시장은 오래된 명성과 브랜드 역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 소비자들은 투명한 가격 정책, 책임감 있는 서비스, 신뢰할 수 있는 기술력, 그리고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요구한다. "합리적인 사치"라는 새로운 소비 기준 속에서 BMW는 이 모든 요소를 충족시키고 있는 반면, 벤츠는 과거의 영광만으로는 이를 지켜낼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BMW의 30년에 가까운 한국 시장 기여, 2018년 화재 위기 극복, 그리고 2025년까지의 지속적인 혁신은 이미 하나의 사례 연구가 되었다. 반면 벤츠의 추락은 과도한 자신감과 기본을 망각했을 때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앞으로의 수입차 시장은 기술 혁신, 지속적인 신뢰 구축, 그리고 한국 소비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움직일 것이다. BMW의 2년 연속 1위 달성과 2025년의 지속적인 우위는 바로 이 새로운 시대의 기준을 가장 잘 충족하는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어떤 브랜드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제공하는가"가 수입차 시장의 승패를 가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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