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퇴직연금제도는 계약형 구조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금형 구조는 30인 이하 중소기업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돼 대부분 근로자가 계약형 제도에만 접근할 수 있다.
계약형과 기금형의 본질적 차이는 명확하다. 계약형은 자산 운용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개인 책임 중심의 구조다. 금융지식이 풍부하고 적극적인 근로자에게는 적합하지만, 정보 비대칭과 교육 부족으로 실질적 보호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면 기금형은 집단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거나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수탁자 책임 중심 구조다. 금융지식이 부족하거나 방치형 근로자들에게 전문가의 운용과 집단의 의사결정을 통한 안정적 수익과 보호를 제공한다.
사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확대는 새로운 제도 도입이 아니다. 퇴직급여 보장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게 근로자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근로자가 반드시 자산운용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구조만 강제되고 있다. 이는 제도적 구속이다. 모든 근로자가 전문가가 운용하는 기금형도 계약형과 함께 선택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허용해야 한다.
계약형은 근로자가 모든 선택과 책임을 지는 구조이므로, 금융기관은 사실상 수탁자 책임이 없다. 반면 기금형은 자산을 집합하여 전문가에게 운용을 맡기고, 수익자의 이익을 위해 충실하고 주의 깊게 운용해야 하는 수탁자 책임이 금융기관에 부여된다.
책임을 지는 곳은 금융기관이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등 여러 금융관련 법률에 따라 감독과 감시를 받게 된다. 때문에 민법에 의거해 수탁법인을 만들고 근퇴법에 수탁자 책임 조항을 나열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책임 구조를 갖는다.
그 결과 퇴직연금이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방치되어 낮은 수익률과 노후보장 불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금형 제도 확대는 근로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퇴직연금을 맡길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찾아주며, 금융기관 간 경쟁을 통해 수익률과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특히 기금형에서는 금융기관이 수탁자 책임을 지게 되어, 자산운용에서 근로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구조가 마련된다. 이는 제도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 wow@globalepic.co.kr]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