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는 흔히 '스마트머니'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다 손실을 떠안는 역할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개인 매수세는 그 성격이 다르다.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금이 아니라, 매달 정해진 날 자동으로 유입되는 구조적 자금이 그 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바로 그 핵심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퇴직연금의 증가분은 약 70조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올해는 증권 평가액 상승분까지 더해지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2026년 퇴직연금의 증가액이 100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00조 원.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자산 증가가 아니다. 시장 변동성이 일어날 때마다 하방을 지지하는 견고한 수요 기반이 그만큼 두터워졌다는 뜻이다.
미국 증시를 키운 401K, 한국 증시를 키우는 퇴직연금
미국 증시의 장기 강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다. 바로 401(K)다. 미국 근로자들이 매월 급여에서 일정액을 떼어 주식 및 펀드에 자동 투자하는 이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제도는, 수십 년에 걸쳐 S&P500과 나스닥의 저변을 다지는 기둥 역할을 해왔다. 단기 공매도 세력이 시장을 흔들어도, 경기 침체 우려가 커져도, 401(K)의 월정액 납입은 멈추지 않는다. 이 지속성이 미국 증시의 구조적 탄력을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다.
한국도 이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퇴직연금의 규모와 주식 편입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국내 증시에도 미국의 401(K)와 유사한 구조적 수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미국과의 격차는 크다. 하지만 방향은 같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이 단기간에 꺾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퇴직연금은 성격상 단타 매매에 쓰이지 않는다. 한번 유입된 자금은 장기간 시장에 머무른다.
지정학 리스크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
중동 전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오를 때마다 시장은 긴장했다. 외국인과 기관은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포지션을 줄였다. 그러나 그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낸 것은 개인이었고, 그 개인의 배후에는 퇴직연금이라는 구조적 뒷받침이 있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이 용감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달 유입되는 자금이 시장을 떠날 이유가 없기에, 증시 하단이 전보다 두터워진 것이다.
물론 퇴직연금이 만능은 아니다. 원금 보장 상품으로 이동하는 자금이 생기면 오히려 매도 압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 연금 수령 연령대가 늘어나면서 출금 수요가 커지는 시점도 언젠가는 찾아온다. 이런 구조적 한계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증시의 체질이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의미 있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변동성이 크고 외국인 수급에 종속된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 평가의 뿌리에는 국내 기반 장기 수요의 부재가 있었다. 퇴직연금의 성장은 그 공백을 채우는 과정이다.
2026년 퇴직연금 순증 100조 원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외국인이 1조 원을 팔아도, 기관이 수천억 원을 털어도, 시장 저변에서 조용히 흘러드는 퇴직연금의 물결은 그 충격을 완화한다. 증시의 하방 지지선이 이전보다 훨씬 탄탄한 기반 위에 서게 된다는 뜻이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P's View] 증시를 떠받치는 힘, 퇴직연금](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311141611023950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CP's View] 증시를 떠받치는 힘, 퇴직연금](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311141650067560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