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1금융권과 달리 경영난에 시달리는 2금융권에서는 "우리 사정이 은행과 다르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자놀이 비판 속 쏟아지는 사회적 책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은행권을 향해 손쉬운 '이자 놀이' 대신 투자 확대에 신경써 달라고 직접 주문한 이후,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요구는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배드뱅크 설립이다.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의 7년 이상 장기연체 채권을 일괄 매입해 탕감하는 이 제도는 금융권 전체가 재원을 분담해야 한다. 여기에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100조원 규모의 정책펀드 참여 압박까지 더해졌다.
최근에는 대형 금융·보험사의 교육세율을 기존 0.5%에서 1.0%로 두 배 인상하는 방안까지 발표되면서 금융권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손해보험 5개사와 생명보험 6개사만으로도 약 3,500억원의 추가 세금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6월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은행 공공성에 대한 과도한 요구로 위험 관리가 왜곡되거나 경쟁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경영 전반에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상생 압박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곳은 2금융권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경영난에 시달리는 저축은행, 상호금융, 여신전문사들이 '금융권'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같은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에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상호금융권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기관이 작년보다도 실적이 더 악화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충당금 적립 강화 등 건전성 요건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벅찬 지점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배드뱅크 설립 과정에서는 가장 많은 부실채권을 보유한 대부업계와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는 연체 7년 이상 부실채권을 액면가의 5%에 일괄 매입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대부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1금융권 대출 기회 제공이나 코로나 채권 매입 허용 등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금융권에 대한 압박이 결국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이 증가한 비용 부담을 대출 금리 인상이나 보험료 인상 등의 형태로 소비자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은행권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의 사회 환원 요구를 완전히 거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획일적인 접근 방식이 금융권 내부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배드뱅크 재원 중 4,000억원은 이미 예산으로 확보한 상황"이라며 "3분기 중 세부 방안을 발표할 텐데 대부업권 등 참여도 최대한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 각 업권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정부가 제시한 상생 정책들이 순조롭게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업권별 여력과 상황을 고려한 차별화된 접근 방식 없이는 금융업계 내부의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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