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구 동성제약 전 회장. [사진=동성제약]](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80610593606068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동성제약의 위기는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2025년 5월 7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까지, 이미 수년간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4년에는 65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재차 적자로 돌아섰다. 한때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도 81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견실한 성장을 이어갔던 회사가 추락한 것이다.
이양구 전 회장, 23년 경영의 그림자
업계는 동성제약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이양구 전 회장의 경영 실패를 지목한다. 2001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 전 회장은 23년간 회사를 이끌었지만, 그의 경영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매출은 900억원대에서 정체됐고, 수익성은 바닥을 쳤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매출원가율이었다. 2024년 기준 56%에 달하는 매출원가율은 일반 제약사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회사 측은 "이 전 회장이 차명 소유한 협력사를 통해 원부자재를 고가에 구매하며 원가율을 끌어올렸다"고 지적했다. 판관비 비율도 매출총이익 대비 100%를 넘어서며, 중견 제약사의 40~70% 수준과 비교하면 현저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
리베이트 스캔들, 도덕적 해이의 정점
2018년 터진 리베이트 사건은 이 전 회장의 도덕적 해이를 여실히 드러냈다. 동성제약은 자회사 동성바이오팜 영업사원을 CSO(영업판매대행)로 등록해 병의원 영업을 진행하면서, 의사들에게 자사 의약품 처방 대가로 2억500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이 사건으로 이 전 회장은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 동성제약의 지배주주 등급이 D등급으로 강등되고, 정부의 '혁신형 제약기업' 지정이 사실상 무산되며 기업 가치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너 일가 간의 경영권 분쟁이 회사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이양구 전 회장은 2023년 10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조카인 나원균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겼지만, 불과 6개월 만인 2024년 4월 보유 지분 14.12%를 브랜드리팩터링에 매각하며 경영 복귀를 시도했다.
나원균 대표는 이에 맞서 2025년 5월 7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시간 벌기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경영권 변동이나 주주 권리 행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법정관리 신청 이후 동성제약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2025년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 15차례에 걸쳐 부도가 발생했고, 누적 금액은 60억원에 달했다. 법원 허가 없이 부채 관련 행위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정상적인 결제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5년 6월에는 177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까지 터졌다. 고찬태 감사가 나원균 대표를 포함한 등기임원 3명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 금액은 자기자본의 31%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회사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주력 제품의 경쟁력 상실
동성제약의 대표 제품들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1972년 출시 이후 '국민 지사제'로 불리며 사랑받아온 정로환은 2023년에야 겨우 연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51년이 걸린 성과다. 염색약 '세븐에이트'의 매출은 2022년 264억원에서 2024년 256억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신규 브랜드의 진입과 저가 경쟁 심화로 시장 지배력이 약화된 것이다.
한때 끓이지 않는 염색약 '양귀비'와 '훼미닌'으로 셀프염색 시장을 개척했던 동성제약이지만,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수익 구조 개선보다는 비용 증가에만 치중한 경영 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회생의 길은 있을까
현재 동성제약은 나원균 대표와 외부 인사 김인수 씨를 공동관리인으로 선임하고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회사 측은 "구조조정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통해 일부 제품군 매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한국거래소는 횡령·배임 혐의와 관련해 동성제약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지정했다. 상장폐지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경영권 분쟁도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안정적인 경영 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68년 역사의 동성제약이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할 수 있을까. 정로환의 특유한 냄새처럼 강렬했던 한 시대를 풍미한 국민 제약사의 몰락은, 오너 리스크와 방만한 경영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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