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이 431.7조원으로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하며 급속한 성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한 금액이 75.2조원으로 전년 대비 53.3%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수치의 변화가 아닌, 우리나라 퇴직연금 운용에 있어서 '저축에서 투자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연금수령 방식입니다. 금액 기준으로 총 수령금액 19.2조원 중 57.0%에 해당하는 10.9조원이 연금수령으로, 퇴직연금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일시금수령 비중을 뛰어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100세 시대를 맞아 장수위험(*개인이 예상보다 오래 살아서 은퇴 자금이 부족해질 위험을 의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일시금 vs 연금수령: 두 가지 관점의 철학적 차이
일시금 수령의 관점은 퇴직금을 하나의 '목돈'으로 인식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퇴직 시점에 받을 수 있는 목돈의 크기가 중요하며, 따라서 원리금보장형 상품 중심의 안전한 보관을 선호하게 됩니다. 현재도 원리금보장형이 356.5조원(82.6%)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관점을 반영합니다.
반면 연금수령의 관점은 퇴직연금을 '평생소득원'으로 인식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은퇴 후 20-30년간 지속될 장수위험에 대비하여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는 수익률 확보가 핵심 과제가 됩니다. 2024년 퇴직연금 연간수익률 4.77%가 최근 2년간 물가수익률이나 정기예금 금리를 상회한 것처럼, 실적배당형 투자를 통한 적극적 운용이 필요합니다.
확정금리 중심 vs 실적배당형 운용: 장단점 분석
확정금리 중심의 원리금보장형 운용의 가장 큰 장점은 원금 손실 위험이 없다는 안전성입니다. 예적금, 보험, 국채 등으로 구성된 이 방식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며, 단기적 변동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리금보장형의 2024년 수익률은 3.67%로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확정금리 방식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크게 상회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현재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3-4% 수준의 수익률로는 구매력 보전이 어려우며, 특히 20-30년의 장기 은퇴 기간을 고려하면 실질 구매력이 크게 감소할 수 있습니다.
실적배당형 운용의 핵심 장점은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 창출 가능성입니다. 2024년 실적배당형 수익률이 9.96%를 기록한 것처럼, 시장 상승기에는 원리금보장형 대비 2-3배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TDF(타겟데이트펀드)가 투자 상위를 차지하고, ETF(상장지수펀드)의 경우 미국 주식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에 집중 투자되는 등 글로벌 분산투자를 통한 리스크 관리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적배당형 운용의 단점은 단기 변동성과 원금손실 가능성입니다. 시장 하락기에는 손실을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클 수 있습니다. 또한 적절한 상품 선택과 포트폴리오 구성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합니다.
수익률 상위 10% 가입자들의 비밀
권역별 수익률 기준 상위 10% 가입자들의 자산구성을 살펴보면, 권역 평균대비 실적배당형 비중이 3배 이상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은행과 증권사의 상위 IRP(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각각 84%, 92%의 적립금을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성과는 놀랍습니다. 상위 10% 가입자들의 수익률은 일반 평균을 훨씬 상회하며, 이는 적극적인 실적배당형 투자가 장기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TDF는 은퇴 시점(Target Date)에 맞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펀드로, 생애주기에 맞춘 자동 리밸런싱 기능을 제공합니다.
장수위험 대비를 위한 퇴직연금 운용 전략
100세 시대의 장수위험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은퇴 후 30년간 지속될 생활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100세 시대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퇴직연금에 대한 전략적인 운용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단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1단계: 생애주기(라이프 사이클) 관점의 자산배분
젊은 시기(30-40대)에는 실적배당형 비중을 70-80%까지 높여 성장성을 추구하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50대 후반) 안전자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전략이 효과적입니다. TDF는 예상은퇴시점을 타겟데이트로 하여 한국인의 생애주기에 맞춰 펀드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글로벌 분산투자 펀드로, 이러한 자동 조절 기능을 제공합니다.
2단계: 글로벌 분산투자를 통한 리스크 관리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국 S&P500, 나스닥100 등 해외주식 ETF를 활용한 글로벌 분산투자가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국내 경제 상황에만 의존하지 않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3단계: 세제 혜택을 활용한 연금수령 전략
퇴직금을 IRP로 수령하여 연금수령시 퇴직소득세의 70% (실제연금수령연차 11년차부터는 60%)만 과세하고, 발생수익은 연령에 따라 3.3%~5.5% 저율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퇴직급여를 연금 형태로 장기간 수령하면 추가로 세금을 덜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세제 혜택은 더욱 확대될 전망입니다.
실제 운용 시 고려사항
퇴직연금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은퇴 시점과 위험 성향에 맞는 맞춤형 전략입니다. 계좌당 연금수령액이 1억 4,694만원인 반면, 계좌당 일시금 수령액은 1,654만원으로, 적립금 규모에 따른 수령 방식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투자에 익숙하지 않은 가입자의 경우, 디폴트옵션 제도나 로보어드바이저(RA)를 활용한 투자일임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를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퇴직연금사업자로 상품을 이전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
2024년 퇴직연금 투자 백서는 우리나라 퇴직연금이 '저축에서 투자로', '일시금에서 연금으로'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전환점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적배당형 비중이 17.5%로 증가하고, 연금수령 비율이 57%를 돌파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장수위험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원금보장을 넘어서 장기적 관점의 실적배당형 투자가 필수입니다. 다만 이는 무작정 위험한 투자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의 생애주기와 위험성향에 맞는 균형잡힌 포트폴리오를 통한 스마트한 투자를 의미합니다.
앞으로 퇴직연금은 단순한 '퇴직금 보관소'가 아닌, '평생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입자 개인의 적극적인 관심과 학습, 그리고 금융기관의 혁신적인 상품 개발과 서비스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100세 시대의 장수위험, 이제 퇴직연금으로 현명하게 준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글로벌에픽 신상근 연금경제연구소장 / pinefield@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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