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 급성장이라는 호재 속에서 벌어지는 이번 경쟁은 단순한 점유율 다툼을 넘어 한국 자산운용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의 '심기일전', ETF로 1등 되찾기
삼성은 자산운용 분야에서 다소 독특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과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이라는 두 개의 자산운용사를 운영하면서도, 정작 액티브 운용에서는 1등 자리를 내주고 있는 상황이다. 공모펀드 시장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밀리고, 사모펀드에서는 한국투자신탁운용과 교보악사자산운용 등에 뒤처지는 모습이다.
삼성은 운용자산(AUM) 기준 1위다. 그 중심에 ETF가 있다. 2002년 KODEX200을 출시하며 국내 ETF 시장을 열었던 삼성자산운용은 현재도 ETF 시장에서 약 40%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TIGER 브랜드로 맹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자산운용이 2016년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을 분리한 것도 ETF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액티브 운용 부문을 떼어내고 삼성자산운용을 패시브 운용, 특히 ETF에 특화된 회사로 거듭났다.
배재규 사장이 남긴 유산과 새로운 도전자들
현재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을 맡고 있는 배재규 사장은 '한국 ETF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삼성자산운용에서 인덱스본부장, ETF본부장, 패시브본부장을 거치며 한국 ETF 시장의 기반을 닦았다. KODEX200부터 시작해 각종 섹터별, 테마별 ETF 상품을 기획하고 출시했던 그의 경험과 노하우는 삼성자산운용이 ETF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특히 주목할 인물은 최근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키움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이경준 본부장이다. 이 본부장은 최근 ETF 시장에서 대세가 된 커버드콜 ETF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커버드콜 ETF는 고배당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좌우되는 특성상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이런 상품 개발 경쟁이 자칫 '유사 상품 남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는 ETF들을 보면 기존 상품과 큰 차별화가 없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퇴직연금이 바꿀 ETF 지형도
ETF 시장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400조원을 넘어서면서 ETF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늘어나면서 개인이 직접 투자할 수 있는 ETF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수수료 인하 경쟁까지 맞물리면서 ETF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주요 ETF 상품의 보수를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고, 이는 투자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운용사 입장에서는 수익성 악화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ETF 시장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가격 경쟁보다는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 교육, 자산배분 컨설팅, 리밸런싱 서비스 등 부가 서비스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
결국 이번 ETF 시장 경쟁의 승부는 누가 투자자들의 니즈를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한 수익률 경쟁을 넘어 투자 편의성, 정보 제공, 고객 서비스 등 종합적인 경쟁력이 승부를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한 것은 이런 경쟁이 종국에는 투자자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더 나은 상품, 더 낮은 수수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TF 시장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한국 자산운용업계 전체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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