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한국 유통업계에는 두 개의 중요한 발표가 있었다.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는 7조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해 홈플러스를 인수하며 "향후 2년간 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는 "로켓배송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3만9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업계의 시선은 두 기업에 대해 상반됐다. 쿠팡의 야심 찬 계획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고, 새 주인을 맞은 홈플러스의 재도약에는 긍정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이 두 기업의 현실은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2015년 당시 쿠팡의 연매출은 1조1133억원으로, 홈플러스 연매출(8조5682억원)의 13%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 쿠팡은 유통업계 최초로 연매출 40조원을 돌파했고, 2023년에 이어 2년 연속 6000억원대 영업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홈플러스는 매출이 7조원대로 오히려 감소했고, 2021년 이후 쌓인 적자 규모가 7500억원에 달해 결국 지난 4일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이 같은 극명한 차이는 두 기업의 투자 전략에서 비롯됐다. 쿠팡은 온라인 시장 성장을 정확히 예측하고 물류 인프라 구축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6조원이 넘는 누적 영업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전국에 물류센터를 대폭 확충했다. 당초 14곳이었던 물류 시설은 현재 30개 지역에 100개 이상으로 늘어났고, 자동화 첨단시설까지 갖췄다. 쿠팡은 위기 순간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을 설득해 블랙록,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34억 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2021년에는 뉴욕증시(NYSE) 상장까지 성공했다. 적자 행진에도 불구하고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를 지속한 결과, 2023년부터는 영업 흑자 기조로 전환했다.
이러한 투자는 서비스 확대로 이어졌다. '로켓배송'은 현재 전국 260개 시군구 중 182곳까지 확대됐으며, 2027년부터는 230여개 지역(약 5000만명)까지 서비스 범위가 넓어질 예정이다.
반면 MBK가 인수한 홈플러스는 투자보다는 자산 매각에 집중했다. 1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한 직후인 2016년, 가좌점, 김포점 등 5개 점포를 매각하고 재임차하는 '부동산 유동화' 전략을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자산 매각대금은 4조원에 달하지만, 이 자금이 물류망이나 점포, 서비스 개선에 얼마나 투자됐는지는 불분명하다. 한때 140개였던 점포는 현재 126개로 줄었고, 앞으로 10개 점포가 추가로 폐점될 예정이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홈플러스는 9102억원의 누적 영업흑자를 냈지만, 이 기간 신규 투자한 점포는 2016년 경기 파주 운정점이 유일했다.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방식도 달랐다. 쿠팡은 단순한 물건 판매를 넘어 엔터테인먼트 등 유통 외적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19년 론칭한 '와우 멤버십'은 무료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신선식품), 직구, 쿠팡플레이 무료시청, 쿠팡이츠 무료배달 등 10가지가 넘는 혜택을 제공하며 충성 고객을 확보했다. 현재 와우 멤버십 회원은 1400만명(2023년 말 기준)에 달한다. 특히 예능, 영화, 실시간 스포츠 중계 등을 제공하는 쿠팡플레이는 남성 고객층을 사로잡는 핵심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홈플러스는 온라인 쇼핑 성장에 대응하는 물류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2018년 롯데와 신세계가 오프라인 매장이 주력임에도 대규모 온라인 물류 투자를 단행했을 때도, 홈플러스는 2019년까지 온라인 투자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재 홈플러스가 보유한 물류센터는 전국 7곳에 불과하여, 기존 대형마트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물류는 하루 출고량이 5만~10만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수십만건을 처리하는 전용 물류센터와 비교하면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한 네이버, 이마트, 컬리 등 경쟁사들이 멤버십 서비스로 충성 고객 확보에 나선 것과 달리, 홈플러스는 이 경쟁에서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용 측면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쿠팡의 전국 직고용 일자리는 2015년 5465명에서 지난해 말 8만89명으로 급증한 반면, 홈플러스는 2만6000여명에서 1만9326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홈플러스의 부채비율은 2024년 1월 말 기준 462%로, 1년 전보다 1506%포인트 개선됐다고 회사 측은 주장하고 있다. 또한 직전 12개월 매출은 7조462억원으로 2.8% 신장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이익 창출력 약화와 현금 창출력 대비 과중한 부담 등을 이유로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은 두 기업의 엇갈린 운명에 대해 근본적인 비즈니스 철학의 차이를 지적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은 "MBK가 유통 생태계와 업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익성 극대화에만 집중한 것이 문제"라며 "가장 핵심인 '고객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점이 경쟁력 악화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도 "유통기업의 본질은 '수익 추구'가 아닌 '고객 가치'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쿠팡은 6조원대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망에 투자한 이후에도 2023년부터 영업흑자 기조로 전환했음에도 추가 3조원 물류 투자를 진행하는 등 고객 혜택을 강화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회생 절차는 단기자금 상환 부담 경감을 위한 사전 예방 차원의 조치라고 회사 측은 강조하고 있으며, 회생 개시 결정으로 금융 부담이 줄어 현금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시장 변화에 둔감했고 선제적 투자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10년 전 두 기업의 시작은 달랐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와 고객 가치 추구라는 유통업의 본질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가 오늘날의 극명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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