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게임에서 비롯된 20년의 신뢰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번 주 서울에서 김택진 엔씨 대표를 만난다. 두 기업의 인연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엔씨가 '리니지'와 '아이온' 같은 대작 PC 온라인 게임을 개발할 때마다 엔비디아의 그래픽 기술이 핵심이었다. 화려한 그래픽 표현과 안정적인 성능이 필요했을 때, 엔비디아의 기술은 게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솔루션이었던 것이다.
이 신뢰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엔씨는 '지스타 2025'의 모든 시연 부스에 엔비디아의 최신 GPU '지포스 RTX 5080'을 탑재했다. 게임스컴과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같은 세계적 행사에서도 두 회사는 함께했다. 20년이 넘은 협력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파트너십으로 정착된 것이다.
로봇의 시대, AI의 진화
하지만 이번 회동의 의미는 과거에만 있지 않다. 엔씨는 최근 AI 자회사 NC AI를 중심으로 피지컬 AI—즉 로봇과 자율기계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엔비디아 역시 올해부터 로보틱스와 피지컬 AI를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내걸었다. 젠슨 황은 최근 각종 행사에서 로봇과 디지털 트윈을 AI 산업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반복해서 강조해왔다.
두 회사가 게임 기술로 다져온 신뢰를 피지컬 AI 분야로 확장할 가능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업계는 이번 회동을 통해 로봇 기술 개발과 AI 협력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전 프로젝트로 입증되는 기술력
NC AI의 움직임은 이미 현실이다. 지난달 현대로템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NC AI는 국방과학연구소의 '피지컬 AI 기반 통합 시뮬레이터 및 모듈형 로봇 시스템' 국책 과제를 수주했다. 국방용 무인 로봇 기술을 만드는 사업으로, NC AI가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월드 모델 기술 개발을 총괄한다.
이뿐 아니다. NC AI는 포스코DX와도 손을 잡고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 공동 개발에 나섰다. 시각·언어·행동 모델(VLA)과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범용 로봇 지능 기술을 만드는 중이다. 엔씨는 게임 개발로 축적한 그래픽 기술과 시뮬레이션 노하우를 이제 피지컬 AI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게임산업에 바치는 존경
황 CEO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여러 번 표현되어 왔다. 지난해 10월 방한 당시 그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회장들과의 '치맥 회동' 직후 곧바로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지포스와 PC 게임, PC방, e스포츠가 없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는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엔비디아의 성공에 한국 게임 생태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 방한에서 황 CEO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국내 주요 기업인들과 잇따라 만난다. 각 기업의 AI 전략이 다를 것이고, 그에 따른 협력 방안도 달라질 테다. 하지만 엔씨와의 회동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게임에서 비롯된 신뢰 위에 로봇 시대의 새로운 협력을 세우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피지컬 AI는 단순한 기술 용어가 아니다. 제조업, 국방, 물류, 의료 등 실제 세계의 모든 산업을 변화시킬 기술이다. 엔비디아는 이 시장에서 GPU와 칩 공급자로서의 위치를 강화하려 하고, 엔씨는 로봇과 로봇 두뇌를 만드는 개발자로서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게임 회사와 글로벌 칩 대기업이 만나 새로운 AI 시대를 함께 그려나가려는 움직임. 그것이 이번 회동의 진짜 의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