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일부승소로 갈린 대법원 최종 판결
지난달 2일 대법원은 현대제철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는 원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재판부가 상고를 심리하지 않고 그 판결을 확정하는 절차다. 현대제철과 공정위 양측이 모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현대제철의 일부승소 판결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 사건을 종료했다.
8년간 이어진 담합, 가격 조율의 적나라한 흔적
담합의 출발점은 2010년이었다. 현대제철을 포함한 제강사 7개 업체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8년간 철근의 원료인 철스크랩 구매 가격을 의도적으로 조율해 왔다. 철스크랩은 철강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나 폐철강 제품을 수집·선별·가공한 고철로, 단기간에 공급량을 늘리기 어려운 시장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담합은 기업의 공장 소재지를 기준으로 영남권과 경인권으로 권역을 나눠 진행됐다. 각 업체의 구매팀장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이 과정에서 '가명을 사용'하거나 '회의 결과 문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 적발을 피하기 위한 치밀한 은폐 행동까지 자행했다. 담합의 조직성과 의도성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스크랩 현안에 공동 대응" - 내부 문건으로 드러난 공모
현대제철의 내부 문건에는 당시 경영진들이 담합을 어떻게 정당화하려 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현대제철 경영진은 "제강사 간 협력을 통해 국내 스크랩 현안인 가격 및 수급에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다른 제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내부 문건에는 "동종사 공조 강화로 가격 인하" 또는 "타사와 계획적인 가격 조정 협의 필요"이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서울고법 행정7부 재판부는 이 같은 증거들을 토대로 "영남권·경인권 사업자들이 구매팀장 모임을 개최한 사실, 해당 모임에서 철스크랩 기준 가격의 변동 폭과 시기에 관한 명시적인 합의가 이뤄진 사실, 현대제철이 이 같은 합의에 가담한 사실을 모두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담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법원의 명확한 입장이었다.
과징금 "부당하게 산정됐다" 법원 지적
재판부는 공정위의 산정 기준에 문제를 제기했다. 법원은 "과거 5년간 위반 행위 횟수는 2회에 불과한데 공정위는 그 횟수가 3회라고 보고 산정 기준의 40%를 가중해 과징금을 산정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과징금 부과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오인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즉, 담합 횟수를 잘못 센 것이 과징금 산정의 출발점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는 뜻이다.
담합은 인정, 과징금 규모만 조정되는 형태로 마무리
결국 대법원은 서울고법의 일부승소 판결을 유지했다. 현대제철의 담합 행위 자체는 완전히 인정되지만, 공정위가 매긴 과징금이 잘못 산정된 부분은 시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현대제철에게 있어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아닌 '절충'의 형태다.
8년여의 법정 싸움 끝에 현대제철은 담합 사실을 벗지 못했다. 하지만 과징금 규모가 낮춰질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고철 가격 조율의 흔적들과 내부 문건이 남아있는 이상, 현대제철이 이 사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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