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60조 잠수함 사업'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는 2030년대 중반 퇴역 예정인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추진되는 대형 국방 사업이다. 캐나다 해군이 보유한 2400톤급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3000톤급 디젤추진 잠수함으로 최대 12척 도입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사업 규모는 상당하다. 잠수함 건조 비용만 최대 20조원으로 책정되어 있으며, 여기에 향후 30년간의 유지·보수·운영(MRO) 비용 40조원을 더하면 총 사업 규모는 60조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규모로, 수주에 성공할 경우 국방산업 전체에 미칠 영향력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원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독일의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과 최종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24년 11월 최종 숏리스트(적격 후보)에 이름을 올린 한국 팀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독일과 대등하거나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캐나다 '절충교역' 조건이 게임 체인저로
초기 경쟁 구도는 잠수함의 성능, 기술력, 납기 등이 결정 요소였다. 그러나 최근 캐나다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조건들이 수주전의 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캐나다는 절충교역(ITB, Industrial & Technological Benefits)을 명목으로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자국 내 산업협력을 핵심 선정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는 잠수함 도입과 함께 두 가지 공통 조건을 제시했다. 먼저 자국 내 유지보수 인프라 구축이고, 추가로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와 기술 협력이 필수 요구사항이다. 특히 한국 팀에게는 현대자동차의 현지 공장 설립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독일 팀에게는 폭스바겐 등 독일 완성차 업체의 추가 시설 설립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룹 총수 정의선 회장까지 직접 등판 왜?
26일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특사단 구성은 이례적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외에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신임 해군잠수함사령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포함되었으며, 여기에 정의선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함정·중형선사업부 사장 등이 합류한 것이다.
다만 현대차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 측은 현지 생산시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검토된 바가 전혀 없지만, 한국-캐나다 협력 정책과 캐나다의 풍부한 천연자원 등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협력 방안을 추진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직접적인 자동차 공장 건설보다는 보다 유연한 형태의 산업협력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차의 딜레마: 자동차 공장 건설 가능성
현대자동차그룹의 캐나다 투자 결정은 복합적인 고민이 수반된다. 현대차는 이미 미국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 등 북미 지역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캐나다 시장 규모가 연간 150만대 수준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하면, 캐나다에 별도의 자동차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는 것이 중복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현대차의 역사적 경험도 부담이 된다. 1989년 국내 완성차업체로는 최초로 연산 10만대 규모의 캐나다 브로몽 공장을 설립했던 현대차는 불과 4년 만인 1993년 사업을 철수한 쓸쓸한 기억을 안고 있다. 당시의 경험은 캐나다 진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선 회장이 특사단에 직접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사업이 단순한 기업의 경영 판단을 넘어 국가적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자동차 공장 건설이 아닌 로보틱스, 수소, 도심항공모빌리티(AAM), 배터리, 방산 부품 등 비완성차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소 생태계로 연결되는 현대차와 한화
정의선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의 캐나다 방문에서 주목할 점은 현대차와 한화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수소 생태계에서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한화와 함께 현지에서 수소 생태계 확장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의 전략을 살펴보면 이러한 연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한화는 주력 사업인 태양광과 연계한 수소 생산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한화오션은 2025년 11월 캐나다 에너지개발사 퍼뮤즈에너지와 캐나다 뉴펀들랜드·래브라도 지역 LNG(액화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의 공동추진을 위한 전략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화오션이 이 프로젝트의 개발, 엔지니어링, 금융조달, 선박건조, LNG 물류 등 LNG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통합역량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이러한 에너지 전략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 현대차는 수소차 시장의 선도 주자로서 명맥을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수소 경제를 지향하는 미래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비록 당장의 상용화는 어렵더라도, 수소 경제를 지향하는 두 그룹의 이해관계가 잠수함 수주라는 국가적 과제에서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캐나다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청정에너지 잠재력을 고려하면, 수소 협력은 장기적인 산업협력 모델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방산 수주를 넘어 양국 간의 실질적인 에너지 협력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략이다.
독일 TKMS와의 2파전 구도
현재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은 한국과 독일의 2파전 양상으로 진행 중이다. 초기에는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의 잠수함 제조사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으나, 일본이 2024년 11월 최종적으로 불참을 결정하면서 경쟁 국가가 축소되었다.
독일의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독일 측은 유럽연합(EU) 차원의 경제 협력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으며, 폭스바겐 등 독일의 대규모 자동차 및 산업 그룹들을 활용한 패키지 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독일-노르웨이가 강조하는 NATO 동맹이라는 명분도 그들의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이 이러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캐나다가 요구하는 산업협력 패키지의 규모와 내용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현대차, 한화, HD현대, 대한항공 등 주요 대기업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다.
'팀 코리아' 전면전, 결과는 올해 6월
정부의 방산 특사단은 26일 캐나다로 출국하여 현지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의 연쇄 회동을 갖을 예정이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인천공항에서 "(캐나다) 대규모 방산 사업은 무기 성능이나 개별 기업 역량만으로 도전하기엔 큰 한계가 있다"며 "이번 방문을 통해 우리 잠수함의 우수한 성능과 더불어 양국 간 산업·안보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캐나다 정부의 최고위급을 만나 직접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수주전의 일정은 명확히 설정되어 있다. 2026년 3월에 최종 제안서(입찰서)를 제출하고, 상반기 중, 늦어도 6월 전후로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예정이다. 이는 한국과 독일이 최종 협상에 돌입하기까지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화는 이번 사업에서 잠수함 건조 비용 20조원 외에도 향후 30년간의 유지·보수·운영(MRO) 수익 40조원까지 기대하고 있다. 2040년까지 캐나다 내 2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현지 여론전을 주도하고 있는 한화의 강한 의지도 드러나고 있다.
한화는 최근 록히드마틴캐나다에서 주요 방산사업을 이끌었던 글렌 코플랜드 전 임원을 캐나다 지사장으로 임명했다. 코플랜드 지사장은 캐나다 해군에서 22년간 복무한 경력자로, 현지 정부와의 신뢰 관계 구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한다면, 방산·조선업뿐만 아니라 에너지·철강·기초소재·자동차·항공 등 전체 국내 산업 밸류체인에 선(善)의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방산뿐만 아니라 현대차, 한화 등 주요 대기업까지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 사업의 국가적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정의선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이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재계 3·4세 오너들이 국내에서의 경쟁 관계를 넘어 국익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장면이 연출될 예정이다. 60조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놓고 벌이는 '팀 코리아'의 전면전이 과연 독일의 도전을 제압할 수 있을지, 2026년 상반기의 결과가 한국 방산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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