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 오너 일가 자녀들의 리더십을 조기에 검증하고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2025년 단행된 임원 인사들을 살펴보면, 건설 업계 전반에서 차세대 경영진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우 정정길, 부장 2년만에 상무 승진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이 2023년 6월 대우건설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대우건설 내 중흥그룹 오너 일가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특히 그의 장남 정정길 상무의 빠른 승진은 승계 구도와 맞물리는 행보로 해석된다.
정정길 상무는 2021년 중흥건설 대리로 입사한 후 2022년 대우건설 전략기획팀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 2년 뒤인 2023년 11월 정기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으며, 2024년 11월 최신 임원 인사에서 상무B에서 상무A로 재승진하였다. 부장 입사 후 약 2년 만의 빠른 승진은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수준이다.
현재 정정길 상무는 북미 해외사업 영업과 미주개발사업을 담당하는 핵심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신시장 개척과 수익성 개선이라는 구체적인 성과가 그의 승진 배경으로 평가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 상무는 그룹 내 최연소 임원으로 꼽히며, 중흥그룹·대우건설의 장기 승계 구도가 가시화되었다"고 분석했다.
정원주 회장은 2024년 10월 현대차그룹 출신의 정진행 부회장을 영입하여 해외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자녀인 정정길 상무와 함께 북미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 시카고와 뉴욕을 방문해 현지 시행사 및 개발사와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글로벌 디벨로퍼로의 도약을 추구하고 있다.
HDC현산 정원선, 입사 1년 만에 CEO 직속 핵심 조직 총괄
정원선 상무보가 배치된 DXT실은 HDC현산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총괄하는 CEO 직속 조직이다. DXT는 'Digital Transformation eXcellence'의 약자로, 회사의 사업 구조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혁신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그룹의 의지가 담긴 인사 결정으로 풀이된다.
현재 HDC현산은 인공지능(AI) 기반 건설 솔루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드론·빌딩정보모델링(BIM) 융합 기술을 기반으로 건설 현장의 생산성과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한편, 실시간 드론 영상 스트리밍을 활용한 안전관리와 BIM 기반 3차원 모델링, 공정·원가관리 솔루션 등을 단계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호반그룹 형제 분업 체제, 건설과 비건설 영역 분리 가속
호반그룹은 창업주 김상열 회장의 자녀들이 그룹의 핵심 경영을 분담하는 구조를 더욱 명확히 했다. 장남 김대헌 사장(호반건설 담당)과 차남 김민성 부사장(비건설 부문 담당) 간의 분업 체제가 공식화된 것이다.
1994년생인 김민성 부사장은 2018년 호반산업에 상무로 입사한 후 2022년 전무로 승진했으며, 2025년 12월 정기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7년 만의 승진으로, 형인 김대헌 사장(2018년 부사장 승진, 2020년 사장 승진)과 유사한 경력 궤적을 따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형제 모두 기획 담당 임원을 역임했다는 것이다. 김대헌 사장은 호반건설 미래전략실 전무를 거쳐 2018년 기획부문 대표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김민성 부사장은 호반그룹 기획담당 전무를 맡았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유사한 경로와 최근의 승진이 "수년 내에 공식적인 계열 분리가 이뤄질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호반그룹은 현재 호반산업을 지주사 'HB호반지주(가칭)'와 시공·토목 사업 전담 '호반산업'으로 나누는 물적분할을 추진 중이다. 분할 완료 시 김민성 부사장은 지주사의 최대주주로 올라 호반산업과 대한전선 등 비건설 부문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전망이다.
또한 호반그룹이 보유한 대한전선은 올해 3조원을 넘는 매출을 기록했으며, 최근 삼성금거래소도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비건설 부문의 성장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호반그룹 내 건설부문 매출이 3조4019억원인 반면 비건설 부문 매출은 5조3935억원으로 이미 건설 부문을 넘어선 상황이다.
자녀 조기 전진배치 선례 남긴 GS건설·호반건설
이처럼 주요 건설사에서 오너 일가 자녀들의 조기 전진 배치는 점차 일반적인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GS건설의 허윤홍 사장과 호반건설의 김대헌 사장이 대표적인 선례를 제시했고, 이제 다른 건설사들도 비슷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 자녀를 전략 조직에 먼저 배치한 뒤 실무 경험을 충분히 쌓게 하고, 빠른 승진을 통해 경영 수업을 본격화하는 흐름이 뚜렷하다"며 "장기 승계 구도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 업계가 이러한 전략을 추진하는 배경은 명확하다. 현재 한국 건설산업은 부동산 경기 둔화,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악화, 저금리 기조 전환 등 여러 외부 요인으로 인한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오너 일가 자녀들의 리더십을 조기에 검증하고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경영 전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우건설, HDC현산, 호반그룹 같은 대형 건설사들이 차세대 경영진을 핵심 사업부나 전략 조직에 배치하면서, 이들의 성과가 회사 차원의 신사업 추진과 조직 혁신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설산업 구조적 변화 주도 가능성에 주목
건설사들이 오너 자녀의 빠른 승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세습이 아니라 구체적인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정정길 상무의 북미 사업 확대, 정원선 상무보의 디지털 전환 추진, 김민성 부사장의 포트폴리오 다각화는 모두 회사의 미래 성장 방향과 맞물려 있다.
정원주 회장이 취임한 이후 대우건설이 주택건축 중심에서 국내 SOC·인프라,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해외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고, HDC현산이 디지털 건설환경 구축에 투자하고 있으며, 호반그룹이 비건설 부문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모두 차세대 경영진의 역할 강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향후 건설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주도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차세대 경영진이 단순히 기존 사업을 지속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도입에 적극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들이 얼마나 경영 역량을 발휘하고 회사의 실적 개선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가 건설업계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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