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92개 대기업 집단을 포함한 주요 200대 그룹과 중견·중소기업 65개 등 총 310개 기업에서 활약하는 1970년 이후 출생 오너가 임원 336명을 분석한 것이다. 정기보고서 및 올해 12월 5일까지의 임원 승진 현황을 기초로 한 이 조사는 재계의 미래 리더십 지형을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로 평가된다.
50세 미만 회장급 14명...최연소는 40세 여성 회장
조사 대상 중 회장급 직위를 보유한 임원은 총 39명으로, 이 중 올해 나이 기준 50세 이상인 경우가 25명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55세),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53세),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52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50세 미만의 젊은 회장들의 약진이다. 14명의 40대 이하 회장 중 1970년대생으로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49세), 구광모 LG그룹 회장(47세), 최현수 깨끗한나라 회장(46세) 등이 있으며, 1980년대생 중에서는 정기선 HD현대 회장(43세), 박주환 티케이지휴켐스 회장(42세) 등이 활약 중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경주선 동문건설 회장이다. 올해 40세의 경주선 회장은 이번 조사에서 최연소 회장으로 기록되었으며, 여성 경영진의 약진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여전히 남성 중심의 재계 구도 속에서 40대 초반의 여성 회장이 등장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부회장급도 절반 이상이 젊은 세대
1970년대생 부회장 중에는 김용민 후성그룹(49세), 주지홍 사조대림(48세), 정대현 삼표시멘트(48세) 등이 포함되어 있고, 1980년대생 부회장은 무려 13명에 달한다. 특히 1980년대생 중에서도 승지수 동화기업 부회장(39세), 서준석 셀트리온 수석부회장(38세) 등 30대 부회장들이 등장하면서 기업 경영의 젊어지는 추세가 뚜렷하다.
사장급 CEO 중심으로 활약하는 젊은 오너들
현대자동차그룹의 주력 계열사 경영진을 비롯해 이주성 세아제강지주 사장(47세),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47세), 유석훈 유진기업 사장(43세), 곽정현 KG모빌리티 사장(43세) 등 다양한 산업에서 젊은 사장들이 활약 중이다. 특히 40대 초반의 사장들이 주요 계열사를 경영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단순한 후계자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경영 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성 임원 진출...회장까지 확대되는 추세
한국 재계의 여성 임원 진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1970년 이후 출생한 여성 회장·부회장은 현재 9명으로 파악되었다. 이는 종전의 여성 임원 진출이 주로 부회장급이나 사장급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진전이다.
정유경 신세계 회장(53세)을 비롯해 최현수 깨끗한나라 회장(46세), 경주선 동문건설 회장(40세) 등이 회장 직책을 맡고 있으며, 부회장으로는 정혜승 인지디스플레이(53세), 김주원 DB그룹(52세), 임주현 한미약품(51세) 등 6명이 추가로 활약 중이다. CXO연구소는 향후 5년 내 1970년 이후 출생한 여성 회장이 10명 정도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령대별로 분석하면 조사 대상 336명 중 여성은 58명(17.3%)으로, 남성 278명(82.7%)과 비교해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점진적인 증가 추세는 분명하며, 이는 차세대 리더십 구성의 다양성 확대를 시사한다.
'AI시대'가 세대교체를 가속화한 이유
이처럼 급속한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배경에는 여러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CXO연구소의 오일선 소장은 "1940-1950년대생의 구(舊) 7080세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반면, 1970-1980년대생의 신(新) 7080세대가 회장·부회장으로 승진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2020~2030년이 두 세대가 경영 지휘봉을 주고받는 본격적인 세대교체 전환기"라고 강조했다.
전문경영인 부회장 층이 축소되는 이유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젊은 오너들의 경영 경험 축적으로 전문경영인에 대한 의존도가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둘째, AI 시대의 도래가 오랜 경험과 관록에 기반한 전문경영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약화시켰다.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즉시 실행하는 젊은 임원들이 더 적합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셋째, AI 시대에 맞춘 조직 정비의 필요성이 커졌다. 기존 조직의 기반 위에 자신의 경영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젊은 오너들은 조직을 슬림화하고 재편하려 하고 있다. 넷째, 올해 주요 기업들의 실적 부진으로 전문경영인 부회장 단의 존재 이유가 약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오너 경영자들은 조직 효율성과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 부회장단을 과감히 축소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재계는 구세대와 신세대가 만나는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젊은 오너들의 약진으로 재계의 리더십 구도는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여성 임원의 진출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202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될 이러한 세대교체의 파장은 한국 기업들의 경영 철학과 전략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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