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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운용 입찰가 유출 의혹"… 흥국생명 법적대응 나섰다

우선협상대상에 중화권 사모펀드 힐하우스 … 흥국 "프로그레시브 딜은 술책" 반발

2025-12-09 10:40:00

"이지스운용 입찰가 유출 의혹"… 흥국생명 법적대응 나섰다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이 예상치 못한 법정 공방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본입찰에서 최고가를 제시한 흥국생명이 입찰 과정의 불공정성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중화권 사모펀드 힐하우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흥국생명은 9일 입장문을 통해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절차는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았다"며 "입찰 과정에서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 인수합병(M&A) 역사상 보기 드문 입찰자의 정면 반발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최근 외국계 사모펀드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힐하우스는 본입찰 이후 '프로그레시브 딜'을 통해 인수 가격을 1조1000억원까지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본입찰 이후 잠재적 인수자 간 추가로 가격을 두고 경쟁하는 방식이다. 힐하우스는 당초 본입찰에서 9000억원대 중반을 제시했으나, 이후 이 과정을 통해 인수가를 대폭 올렸다. 본입찰에서 약 1조500억원을 제시한 흥국생명보다 500억원 높은 금액이다.

흥국생명의 반발은 여기에 집중됐다. 흥국생명은 "당초 주주대표와 매각주간사는 본입찰을 앞두고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며 "이를 믿고 본입찰에서 최고액을 제시하며 진정성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매각 주간사는 본입찰 이후 우선협상대상자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힐하우스에 프로그레시브 딜을 제안하며 인수 희망 가격을 본입찰 최고가 이상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며 "당초 약속은 본입찰에서 최고가를 높이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흥국생명은 "이 과정에서 매각주간사가 힐하우스에 흥국생명의 입찰 금액을 유출했을 가능성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입찰가 유출은 M&A 시장의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흥국생명은 "이번 결정은 한국 부동산 투자 플랫폼에 관심을 둔 중국계 사모펀드와 성과급을 노린 외국계 주간사가 공모한 합작품"이라며 "매도인에게 부여된 재량의 한계를 넘어 자본시장의 신뢰와 질서를 무너뜨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힐하우스, 중화권 배경 논란 속 국내 대형 하우스 첫 인수

이번 인수전에서 승기를 잡은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는 중국 출신 장레이 대표가 설립한 사모펀드 운용사다. 장 대표는 중국 허난성 출신으로 인민대에서 국제금융을 공부한 뒤 예일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치고, 예일대 기금을 종잣돈으로 2005년 힐하우스를 창립했다.

힐하우스는 텐센트, 징둥닷컴 등 중국 빅테크 투자로 급성장했으며, 글로벌 자금과 함께 중국 자본도 상당 부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장 대표가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했지만, 업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중화권 사모펀드로 분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컬리, 크래프톤 등 굵직한 투자에 참여했다. 다만 한국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금융회사 인수는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해 업계는 이번 딜의 성패에 주목하고 있다.

힐하우스는 '중국색 지우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힐하우스 홈페이지에는 '2005년 아시아에서 설립된 투자사'라는 표현만 적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1월 "힐하우스는 중국 직원을 줄이고, 웹사이트에서 중국에 대한 명시적 언급을 상당 부분 삭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국민 노후자금 운용사, 중화권 자본 넘어가나

이지스자산운용이 힐하우스에 넘어갈 경우 파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이지스운용은 2010년대 초 독립계 운용사로 출발해 업계 1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공제회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수탁해 왔다. 운용자산(AUM)은 약 67조원에 달한다.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국내 대형 하우스가 중화권 자본에 넘어간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국계 사모펀드가 이지스운용의 새 주인이 될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충돌, 자본 유출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사한 논란은 올해 초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롯데렌탈 인수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어피니티의 창립자인 KY 탕 회장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화교)이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서류에 펀드의 주요 거점이 홍콩 주소로 기재되면서 '중화권 색채'가 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피니티가 롯데렌탈에 앞서 SK렌터카를 인수해 국내 렌터카 시장 1, 2위를 장악한다는 점도 우려를 증폭시켰다. 당시 어피니티는 "우리는 중국계나 홍콩계 펀드가 아닌 글로벌 사모펀드"라고 부인하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사모펀드의 국적을 구분하는 것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기술 유출 이슈 등을 계기로 중화권 자본에 대해 거리감을 두려는 국내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첨단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 투자 라운드에 중국 펀드가 참여하려 했지만, 전략적 투자자가 반대해 무산된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본입찰에 참여한 또 다른 후보였던 한화생명은 9000억원대 중후반 수준의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업계에서는 최고가를 적어낸 흥국생명과 자본 여력·규제 대응 역량을 갖춘 한화생명이 2파전을 벌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으나, 힐하우스가 가격 우위를 확보하면서 판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흥국생명의 법적 대응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이지스 인수전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입찰 과정의 공정성 논란과 함께 중화권 자본의 국내 금융사 인수라는 민감한 이슈가 맞물리면서 금융당국의 판단도 주목된다"고 말했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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