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쟁점: 노태우 비자금의 법적 성질
이번 판결의 핵심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태원 회장의 부친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1991년경 지원한 300억 원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2심 판부는 이 자금이 SK그룹의 초기 자본이 되었다는 판단 하에 노소영 관장의 기여도를 35%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했고, 이를 바탕으로 1조3808억 원의 재산분할을 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자금의 출처를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 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불법원인급여의 원칙 적용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적용한 법리는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 규정이다. 이는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이 단순한 부당이득반환청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청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핵심은 노태우 비자금이 불법의 원인으로 형성된 자산이라는 점이다. 대법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피고(노소영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했다. 즉, 불법적으로 적립된 범죄수익은 재산분할의 기여도를 산정할 때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설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또한 최 회장이 혼인관계 파탄 이전에 친인척 및 재단 등에 증여한 SK 주식과 SK C&C 주식, 동생에 대한 증여와 SK그룹 급여 반납 등으로 처분한 927억 원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2심이 이들 재산을 분할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 잘못되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분할 대상이 되는 전체 재산 규모도 2심 기준 4조115억 원보다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대법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의 '특유재산'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 및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말하는데, 혼인 기간이 길거나 배우자가 기여했을 경우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향후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기환송 판결로 인해 사건은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재산분할의 근거였던 노태우 비자금이 기여 내용으로 인정되지 않음에 따라, 2심의 결론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노태우 비자금 부분을 제외하고 재산분할 비율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
최 회장의 재산분할 의무는 1조3808억 원에서 1심의 665억 원에 더 가까울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위자료 20억 원은 대법원이 그대로 확정했으므로 이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최 회장 측 변호사는 "대법원이 SK그룹이 노태우 정권의 불법 비자금이나 지원 등을 통해 성장했다는 부분을 두고, 이를 부부 공동재산의 기여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선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개인 이혼 사건을 넘어, 범죄수익의 법적 지위에 관한 원칙을 명확히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불법적으로 적립된 재산이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을 통해 합법적인 자산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판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