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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 신중한 논의 필요하다

2025-09-02 09:05:56

지승용 글로벌에픽 기업경영연구소장 / 경영학박사.
지승용 글로벌에픽 기업경영연구소장 / 경영학박사.
[글로벌에픽 지승용 기업경영연구소장] 최근 국회와 정부, 여야를 막론하고 추진되는 상법 개정안, 특히 자사주 소각의무화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주주환원’ ‘시장 신뢰 제고’란 명분 아래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이 일정 기간 내 반드시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이 제도는 과연 우리 자본시장에 순기능만을 기대해도 될 일인가.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조원의 자사주를 사들이고, 그중 3조원 어치를 과감히 소각했다. SK이노베이션(8,000억원), 포스코(7,500억원), KT&G(1조2,000억원)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이 이어졌다. 이런 소각 발표를 기점으로 상당수 기업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2~5% 상승했다. 소각이 ‘주주 환원’이라는 시장기대에 부응하면서 신뢰와 투자심리를 동시에 끌어올린 결과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에 대해 ‘기업가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자사주 취득은 기업의 현금이 시장에 유출되는 것이며, 소각 이후엔 그만큼 자산과 자본이 줄어드는 효과가 남는다. 소각 이후 주당순이익(EPS)은 일시적으로 상승하고 ROE(자기자본이익률), PBR(주가순자산비율) 지표도 개선되지만, 기업 전체 수익창출력에 장기 구조적 변화는 없다. 시장이 일시적으로 ‘거래가능 주식 수 감소’에 프리미엄을 부여한다 해도, 자사주 소각 그 자체가 영속적 성과를 담보하진 못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에는 구조적 부작용 우려도 크다. 삼성전자, 포스코처럼 풍부한 현금흐름과 글로벌 신인도를 지닌 대기업은 소각에 따른 일시적 현금유출을 감당할 수 있지만, SK㈜ 등 일부 기업은 대규모 자사주(약 20%) 장부가를 한 번에 소각할 경우 신용등급 하락, 재무지표 훼손, 향후 투자여력 저하 등 불가피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혁신·중소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자사주를 활용한 인수합병(M&A) 전략, 임직원 스톡옵션 또는 자사주 교환사채(CB) 발행 등의 경영적 탄력성은 법적 강제에 의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최근 태광산업은 자사주(약 24%)를 교환사채로 활용해 유동성 확보를 꾀하려 했으나, ‘의무 소각’ 논의 강화와 2대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 등 주주 반발로 실행에 난항을 겪으며 절차가 중단됐다. 법 시행을 앞둔 최근, 소각을 회피하거나 처분을 서두르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제도가 도입될 경우 “경영진의 자기자본 전략 운신 폭이 현저히 줄어들어 기업가치 방어선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는 단순한 기득권 논리가 아닐 수 있다. 경직된 규제는 건전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남기고, 한 번 유출된 현금은 미래 투자로 환류되기 어렵다. 채권자 보호라는 금융시장 핵심 원칙과도 충돌한다.

주주환원 경로의 다원화, 공정한 자사주 활용 원칙을 강화해야 하는 목적엔 동의하나, 각 산업·기업·시장 참가자의 현실과 파급효과를 세밀히 짚지 않은 일괄적 입법은 현명하지 않다. 자사주 소각의무화 상법 개정은 최종 입법 전에 정교한 영향 분석과 다양한 의견 수렴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더 많은 삼성전자, 더 많은 혁신·중소기업이 탄생하려면, 규제 총량 감축과 자본시장의 신뢰 확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로벌에픽 지승용 기업경영연구소장 / sychi@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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