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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의 저주

2025-09-01 09:30:27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이미지 확대보기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글로벌에픽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슬하에 초등학생 두 아들이 있다. 세 살 터울인데, 둘째는 성격이 세서 형에게 자주 덤빈다. 첫째는 어질고 너그러워서 대체로 웃으며 넘어간다.

어느 날 집에 콜라 한 병을 사 두었는데, 둘이서 번갈아 마시겠다며 치열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한 모금 마시는 동안에도 “이제 내 차례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별것 아닌 일로 서로 죽일 기세라니 웃기면서도 안쓰러웠다. 이 싸움은 내가 이렇게 말할 때까지 이어졌다. “돈 줄 테니 같이 가서 콜라 하나 더 사 와라.” 거짓말처럼 둘은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아내는 기아대책이라는 NGO에서 일한다. 이 단체의 비전은 이름 그대로 지구촌 기아 퇴치다. 그런데 기술이 이렇게 발전한 시대에도 여전히 13분마다 1명이 굶어 죽는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이미 생산하고 있지만, 분배 불균형과 전쟁, 기후 위기로 인해 수억 명이 굶주린다.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리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는다.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죽을 힘을 다해 경쟁할까? 대부분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 우리의 경쟁은 ‘죽일 기세’다. 이 표현의 순화된 말이 바로 ‘열심히’다. 열심히 사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 늘 미덕이었지만, 도가 지나친 열심은 결국 타인의 기회를 앗아간다. 80억 인구가 모두 더 열심히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도태되는 이들이 생긴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모두가 더 열심히 살면? 나는 더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더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나타나면? 단순히 열심히 사는 사람은 결국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열심히’라는 단어가 인생의 만능 해답처럼 쓰인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성공한다 하고, 직장에서는 열심히 일해야 승진한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가? 세계 최장 수준의 공부·노동 시간을 자랑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이다. 반대로 북유럽처럼 덜 일하면서도 행복지수를 높게 유지하는 나라가 존재한다. 열심이 반드시 답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나는 왜 열심히 살까? 결국 굶어 죽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한 번 도태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그 뒤로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가속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지금은 과잉공급 시대다. 굶어 죽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를 옥죄는 것은 현실적 위험이 아니라 ‘불안의 상상력’일지 모른다.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에게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있다. 지금까지의 열심을 모두 무력화하는, 어마무시한 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아직은 ‘더더더 열심히’로 버틸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공지능 앞에서는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한다. 밤새 번역 아르바이트를 해도 AI 번역기는 몇 초 만에 수천 문장을 처리한다. 한 달 내내 준비한 기획안도, AI는 몇 분 만에 더 완성도 높게 만들어낸다. 챗바퀴를 아무리 빨리 돌려도, 인공지능은 그것을 단숨에 부숴버린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점점 빨라지는 이 공포의 챗바퀴를 멈추는 방법은 단 하나다.
챗바퀴로부터 내려서, 쉬는 것.

[글로벌에픽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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