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협상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DS 부문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봉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타협이 과연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어 있는 상황이다.
"성과급 상한 없앤다"…반도체 부문 요구 대거 수용
노사가 합의한 핵심 내용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DS 부문만의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는 것이다. DS 부문의 사업 성과 중 10.5%를 특별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고, 기존에 정해져 있던 지급 상한도 폐지하기로 했다. 다만 전액을 현금이 아닌 자사주로 지급함으로써 기존의 성과주의 원칙을 부분적으로 유지했다.
배분 구조 개편도 상당한 변화를 담고 있다. 특별성과급 재원의 40%는 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 등 3개 사업부에 균등하게 나누되, 나머지 60%는 각 사업부의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적자 사업부에는 공동 지급률의 60%만 배분하는 페널티도 포함됐다. 다만 변화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의 적용을 2027년으로 1년 유예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의를 '형평성'과 '시장 원칙' 사이의 절충안으로 평가하고 있다. DS 부문의 특별성과급 신설과 상한 폐지 요구는 수용하면서도, 자사주 지급과 적자 사업부 페널티를 유지함으로써 기존 성과주의 철학의 훼손을 최소화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중심 협상에 DX 부문이 들고일어나다
이번 노사 갈등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신호는 삼성전자 내부 조직 간 신뢰가 균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DS 부문과 DX 부문 간의 이해관계 충돌이 공개적으로 표면화되면서, 한 회사 내에서 마치 별개의 조직처럼 움직이는 모습까지 노출됐다.
구체적으로 DX 부문 소속 조합원들은 교섭권을 가진 DS 중심의 최대 노조가 반도체 사업부 위주로 협상을 진행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지난 한 달 동안 초기업노조에 속한 DX 부문 조합원 약 5000명이 탈퇴를 신청했고, 일부는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교섭 중단 가처분 신청 절차까지 진행 중인 상황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이 부진할 때 모바일·가전 사업이 이를 보완하는 상호 보완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해 왔다. 사업부 간 시너지를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위기 상황에 대응할 역량을 갖춰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협상 과정에서는 사업부별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조직 내 결속력이 흔들리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신뢰 문제는 협상으로 해결 안 된다"
서울대 경제학과 김대일 교수는 현재 상황을 "노사갈등보다 더 어려운 게 노노갈등"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노사 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소할 수 있지만 노노갈등은 신뢰 문제가 얽혀 있어 훨씬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중재로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았지만 사업부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구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비슷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계 관계자도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이 지켜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DS와 DX 간 격차가 더욱 극명해졌다"며 "한 회사 안에서 사업부별 성과급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원팀'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번 합의가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황에 따른 사업부별 실적 변동성이 크다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합의안이 DS 부문을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상대적으로 DX 부문이 소외됐다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향후 두 부문을 아우르는 통합적 보상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또 다른 과제가 된 셈이다.
고객사 신뢰 훼손, 정부 개입의 후유증
이번 위기 상황 자체가 삼성전자 브랜드 신뢰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가 더욱 민감하게 보는 부분은 단순한 생산 차질보다 '신뢰 상실'의 문제다.
반도체 공급 계약에서 가격은 부차적 요소일 뿐, 안정적인 납기와 지속 가능한 생산 능력이 핵심 평가 기준이 된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은 공급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만큼,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면 대체 공급처 검토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글로벌 AI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 시점에서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 장기화는 그 자체로 고객사 관계와 브랜드 신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번 합의가 정부와 중앙노동위원회의 막판 중재 속에 성사됐다는 점이다. 노사 자율 교섭으로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며, 이는 향후 임금 협상 때마다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협력사와 지역 경제가 겪은 긴장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남았다.
무노조에서 유노조로, 새로운 노사 체계 필요
이번 사태는 삼성전자가 무노조 경영 시대에서 유노조 경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병훈은 "삼성전자 노사는 이번 과정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무노조 경영에서 유노조 경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미숙함과 과도한 대응으로 불필요한 진통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측도 20일 밤 입장문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겸허한 자세로 보다 성숙하고 건설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제 남은 과제가 명확하다고 본다. 성과급 제도 개편도 중요하지만, 사업부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와 노사 간 투명한 소통 체계를 동시에 구축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갈등 해소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DS와 DX 부문이 협력하는 '원팀'으로 작동하려면 단순 제도 개편을 넘어 조직 문화 전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