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26일 '대형차량 사각지대 안전장치 필요성' 보고서를 발표하고, 최근 5년간 경찰청 교통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같은 심각성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소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경찰에 신고·접수된 자동차 사고를 분석한 결과, 차량이 클수록 사고 위험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대수 1만대당 사상자 수는 승용차가 6.9명인 데 반해 승합차는 10.8명, 화물차는 8.7명이었다. 특히 덤프트럭 등 건설기계는 38.6명으로 승용차의 5배가 넘었다.
보행자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더욱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치사율에서 승용차는 2.5명에 그쳤지만, 화물차는 5.3명으로 2배 이상 높았다. 덤프트럭 등은 15.8명으로 승용차의 6배를 넘어섰다.
가장 충격적인 수치는 우회전 시 발생한 보행자 사고 치사율이었다. 승용차가 100건당 0.8명의 사망자를 낸 반면, 덤프트럭 등은 22.0명으로 무려 27배 이상 높았다. 승합차도 5.2명, 화물차도 2.9명으로 승용차보다 훨씬 위험한 수준이었다.
승용차보다 3m 넓은 우측 사각지대의 공포
연구소는 이러한 사고의 주요 원인을 밝히기 위해 대형 화물차 8종과 승용차, SUV, 소형화물차의 사각지대 거리를 실측했다. 측정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대형 화물차의 우측 사각지대 평균 거리는 8.17m로, 승용차(4.95m)보다 3m 이상 길었다. 전방과 좌측 사각지대는 차종 간 큰 차이가 없었지만, 우측만큼은 대형 화물차가 압도적으로 넓은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소는 측정 높이별 결과를 종합해 성인은 최소 3m, 어린이는 최소 5m 이상 떨어져야 대형 화물차 운전자가 인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15톤 이상의 대형 화물차는 성인 평균 신장인 172cm 높이의 측정자도 2m 이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높은 운전석, 막힌 도어가 만든 '죽음의 사각지대'
특히 조수석 도어패널의 평균 높이가 1.99m에 달하고 불투명해 운전자의 우측 직접 시야 확보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대형 화물차는 다수의 사이드 미러와 차량 주변 카메라로 시야를 확보하지만, 간접장치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분명했다.
연구소는 전면 유리 아래 부분에 붙인 눈부심방지 반사필름이나 대시보드 위에 놓은 물건들로 인해 운전자의 전방 시야가 가려질 경우 위험이 더욱 커진다고 덧붙였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대형 화물차의 사각지대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UN 국제기준은 대형 화물차의 사각지대 최소화를 위해 낮은 캐빈, 조수석 도어 패널의 넓은 창 면적 등 직접 시계 범위를 개선하는 차량 변경을 유도하고 있다.
영국 런던 교통국은 2021년부터 운전자 직접 시계 영역을 6단계로 구분하고, 3단계 이상이 아닌 차량은 사각지대 첨단장치를 추가 장착해야만 도심 운행 안전 허가증을 발급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일본은 국제기준을 도입해 2026년 신차부터 첨단장치를 의무화할 예정이며, 토요타 히노, 이스즈, 미쓰비시 후소 등 제조사들은 이미 대형 화물차 조수석 도어 하단에 작은 유리창을 적용하고 있다.
유럽은 한 발 더 나아가 첨단 안전장치를 의무화했다. 2022년 7월부터 3.5톤을 초과하는 트럭과 밴에 대해 우측 사각지대 정보 장치(BSIS)와 출발 위험 정보 장치(MOIS)를 신차에 적용하도록 했으며, 2024년 7월부터는 모든 판매 차량으로 확대했다.
BSIS는 대형 화물차가 시속 30km 이하로 주행할 때 우측 사각지대의 자전거 탑승자를 감지해 시각적으로 경고하고, 운전자가 해당 방향으로 회전하려 할 경우 추가 경고를 제공한다. MOIS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차폭 좌우 0.9m, 전면 4.5m 사각지대 내 보행자나 자전거 탑승자를 감지해 경고한다.
국내 대응,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해외 사례와 대조적으로 국내는 대형 화물차에 대한 첨단 안전장치 의무화나 직접 시계 개선 제도가 미비한 상황이다. 현대차 엑시언트가 전방 근거리 충돌 경고 기능을 적용하고 있지만, 이는 자발적 선택일 뿐 의무사항이 아니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요한 수석연구원은 "대형 화물차의 우측 사각지대는 일반 승용차량 대비 거리가 3m 이상 길어 사고 발생 빈도가 높게 나타나며, 사고 시 치사율이 높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형 화물차의 캐빈 높이를 낮추고 조수석 도어 하단에 창유리를 적용하는 직접 시계 개선과,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측 및 전방 사각지대에 있는 보행자 등을 인식하는 첨단장치를 장착하는 방법이 있다"며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특히 "우회전 시 보행자 사고 치사율이 가장 높은 덤프트럭 등에도 사각지대에 대한 사고예방 장치가 보급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등이 뒷받침되면 대형차량 사각지대 사고 예방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행자도 경각심 가져야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우회전 시 발생한 보행자 사망사고 326건 중 48.8%가 횡단보도 내에서, 12.6%가 횡단보도 외에서 횡단 중 발생했다. 전체의 61.4%가 횡단 중 사고였다는 의미다. 이는 보행자 역시 대형 차량의 사각지대를 인식하고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보호자가 대형 차량 우회전 시 최소 5m 이상 떨어지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대형 화물차의 사각지대 문제는 차량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미비, 보행자 인식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연간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유럽과 일본처럼 첨단 안전장치 의무화, 차량 구조 개선 유도, 구매 촉진 정책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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