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과는 수치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올해 1월부터 11월 7일까지 누적 매출 3조 원을 돌파했으며, 이는 2023년부터 3년 연속 달성한 기록이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11월 28일)보다 3주, 2년 전(12월 24일)보다 약 2개월 앞서 3조원에 도달하며 성장 가속도를 높였다.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8.1% 증가한 수치로, 극심한 경기 불황 속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고전하는 상황과는 대조를 이룬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이 국내 주요 백화점 중 가장 먼저 연 매출 3조원을 기록한 단일 점포 기준 1위임을 강조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강남점의 매출이 올해 상반기부터 가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매출 신장률 7%에서 올해 상반기 8.5%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며 리뉴얼 효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간이 매출을 만든다'는 철학의 실현
정 회장이 추진한 가장 핵심적인 경영 전략은 '공간 혁신'이었다. 정 회장은 "백화점의 본질은 공간 경험"이라는 철학 아래 주요 점포의 리뉴얼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고 연관 구매를 유도하는 구조적 혁신을 통해 백화점의 경쟁력을 재정의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강남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식음료(F&B) 공간의 혁신이다. 총 2만㎡(6,000평) 규모의 식품관을 새롭게 조성하며 '스위트파크', '하우스 오브 신세계', '신세계 마켓', '프리미엄 델리'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였다. 특히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파크는 누적 방문객 1,200만 명을 기록했으며 매출은 전년 대비 108% 성장했다. '하우스 오브 신세계' 역시 오픈 1년 만에 매출이 141% 증가했다. 미식 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식품관 매출은 재단장 후 20% 이상 증가했고, 주말 방문객은 10만 명 이상에 달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 라인업 강화도 강남점의 성공 비결이었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에루샤)을 필두로 구찌, 디올, 보테가베네타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 100여 개가 입점했다. 올해 매출의 40%를 명품 부문이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4대 명품 주얼리를 모두 갖춘 강남점에서는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럭셔리 주얼리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VIP 고객층의 성장도 눈에 띈다. 강남점 전체 매출 중 VIP(우수고객) 비중이 올해 처음 절반 이상(52%)을 기록했으며, VIP 전체 매출 성장률은 8% 이상을 기록했다. VIP의 엔트리 등급인 레드(연간 구매 금액 500만 원 이상) 고객 수는 약 10% 증가했다. 외국인 매출도 전년 대비 71% 이상 늘었으며, 올해만 160만 명의 MZ세대 고객이 강남점 팝업스토어를 이용했고 신규 고객은 70%에 달했다.
정 회장은 강남점의 성공을 발판으로 서울 명동 본점을 중심으로 한 '신세계 명동타운'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옛 제일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한 '더 헤리티지'와 명품관 '더 리저브'를 재단장하며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체험형 럭셔리 플랫폼으로 탈바꿈을 꾀했다.
강남과 명동을 중심으로 한 '타운화' 전략은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고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구조적 효과를 만들어내며 백화점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내 본점 '더 리저브(본관)'를 강남점 수준의 럭셔리 백화점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며, 내년 7월에는 본점 신관 '디 에스테이트'를 공개할 예정이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확장의 새로운 도전
공간 혁신과 함께 정 회장이 추진한 또 다른 축은 디지털 전환이었다. 지난 8월 자체 쇼핑 플랫폼 '비욘드 신세계'를 선보이며 백화점 상품을 온라인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했다. 더 나아가 업계 최초로 프리미엄 여행 플랫폼 '비아 신세계'를 론칭하며 백화점의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이 같은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온라인 확장을 넘어 계열분리 이후 신세계의 독립적 경영 체제를 강화하고 데이터 기반 고객 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현재 SSG닷컴은 이마트가 45.6%, 신세계가 24.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정거래법상 완전한 계열분리를 위해선 한쪽 지분을 10%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 신세계가 자체 앱을 통한 상품 직판과 이커머스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향후 독립 경영 체제 구축의 기반을 다지는 행보인 것이다.
조직 세대교체로 혁신의 동력 확보
정 회장은 단순히 구조 개혁에 그치지 않았다. 조직 운영에서도 '성과와 책임'을 명확히 하며 세대교체를 본격화했다. 지난 9월 단행한 2026년도 임원 인사는 정 회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직접 진두지휘한 인사였다.
40대 임원 비중을 전년 대비 두 배인 16%로 확대했고, 전체 임원의 20%에 달하는 13명을 교체하며 세대교체를 본격화했다. 박주형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사장으로 승진하며 신세계센트럴 대표직도 겸임하게 되었다. 또한 젊은 리더를 전면에 배치하고 코스메틱, 패션, 유통 등 주요 부문에 세대교체형 CEO를 선임하면서 조직의 활력을 높였다.
10년간의 성과, 이제 시작
정유경 회장이 총괄사장으로 승진한 지난 2015년만 해도 신세계백화점의 총매출은 약 5조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그 규모는 11조 5,000억 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000억 원대에서 4,000억 원대로 2배가량 증가했으며, 자산 규모는 7조 9,000억에서 15조 원으로 확대됐다.
정 회장이 강남점의 큰 성과를 바탕으로 구축한 랜드마크 전략은 매출 1조 원 이상의 거점 점포를 5개까지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강남점의 향후 목표는 연 매출 4조 원이다. 이를 달성하게 되면 일본의 이세탄 백화점(약 4.3조 원)과 영국 해러즈 백화점(약 4.8조 원) 같은 글로벌 명품 백화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것이다.
정 회장 취임 1년간 신세계는 대규모 자본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을 방어했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9% 감소했으나 매출은 0.5%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 시설 투자액은 전년 대비 230억 원 증가한 2,357억 원을 기록했다.
업계는 리뉴얼과 플랫폼 전환의 효과가 본격 반영되는 2026년부터 신세계의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유경 회장은 단기 성과보다 구조적 변화를 택했다"며 "내년부터는 리뉴얼과 디지털 전환의 효과가 구체적인 성장 지표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온라인 쇼핑 시대 도래에도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설 자리가 충분하다고 자신했던 정 회장의 '공간 혁신 철학'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바로 강남점의 3년 연속 3조 원 달성이다. 여기에 명동 타운화 프로젝트와 전국 거점의 랜드마크화 전략,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의 확대까지 더해지면서 신세계 백화점의 새로운 시대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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