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년 전인 2011년에도 같은 논의가 있었지만 금융업권 간 이해관계와 당국의 소극적 태도로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새 협회가 특정 퇴직연금사업자들의 이익 대변 기구가 아닌, 1300만 가입자를 위한 진정한 공적 기구로 거듭나려면 '가입자 중심의 독립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기둥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새 협회는 명확한 역할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첫째, 은행·증권·보험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흩어진 목소리를 조율해 '가입자를 위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소통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둘째, 형식에 그치는 현행 가입자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 협회 산하에 독립적인 '가입자교육센터'를 설립, 특정 상품 판매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교육 콘텐츠를 보급해야 한다. 가입자가 스스로 노후를 주도적으로 설계하도록 돕는 것이 협회의 가장 중요한 공적 책무다.
셋째, '가입자 자산을 키우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 단기적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벗어나 가입자의 실질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목표들은 협회가 철저히 '가입자 편에 서는 독립성'을 지킬 때만 실현 가능하다. 그 핵심은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다.
우선, 정부로부터의 독립이 먼저다. 협회가 감독 당국의 입장만 대변한다면 존재 의미가 퇴색된다. 협회장은 정부 임명이 아닌 독립적 추천위원회를 통해 중립적 인사가 선출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더 중요한 것은 퇴직연금사업자로부터의 독립이다. 만약 협회가 사업자들의 회비로 운영되고 사업자 대표들이 돌아가며 회장직을 맡는다면, 가입자 이익과 직결된 수수료 인하나 사업자 평가 기준 강화 같은 정책은 제대로 논의되기 어렵다.
협회 임원진은 "퇴직연금 제도 발전에 기여한, 객관성과 전문성을 갖춘 중립적 전문가 그룹"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전문가란 특정 금융회사 현직 임원이 아니라, 학계·연구기관·시민단체 등에서 오랜 기간 가입자 관점에서 제도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이다.
퇴직연금은 현재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14년 전의 아쉬움을 교훈 삼아 모두를 위한 연금 제도의 초석을 놓을 것인가, 다시 눈앞의 이익에 매몰될 것인가.
감독 당국은 협회가 진정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도록 '판'을 깔아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업자들 역시 협회가 바로 서는 것이 시장 전체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라는 대승적 인식이 필요하다.
1300만 가입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협회의 탄생을 기대한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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