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또한 한 사업장에 계약형과 기금형을 함께 둘 경우 기금형만 기본값(디폴트)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원칙도 분명히 했다. 사업자들의 관심이 쏠린 국민연금공단 참여 문제는 국회에서 더 논의할 사안으로 정하고 결정을 미뤘다.
퇴직연금업계는 노동부가 정부의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 발표 하루 만에 설명회를 서두른 배경으로 오는 6일 퇴직연금사업자 CEO 간담회와 연내 입법 일정을 꼽는다.
발표 하루 만에 실무진 소집…1시간 중 40분 질의응답
노동부는 정부 발표 다음 날인 30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한국투자증권 강당에 퇴직연금 사업자 실무진을 불러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참석한 한 증권사 퇴직연금 담당 관계자는 "방안을 발표하고 나서 갑작스럽게 잡힌 자리였다"며 "CEO 간담회 전에 실무진과 소통했다는 절차도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 3분기 말 퇴직연금 적립금 기준 증권업계 3위인 한국투자증권은 장소를 내주고 설명 자료 출력도 맡았다. 퇴직연금업계는 이 회사가 올해 초 사업자 간사를 지낸 점이 장소 선정에 작용한 것으로 본다. 이날 참석자는 각 사의 연금 담당 팀장·부장급 실무진이 주를 이뤘고, 일부 회사는 본부장급도 보냈다.
설명회를 진행한 노동부 관계자는 정부의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20분 남짓 요약한 뒤 나머지 40분가량을 질의응답에 할애했다. 앞의 증권사 관계자는 "설명 자체는 보도자료를 요약하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어진 문답에서는 신한은행·우리은행·IBK기업은행과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 삼성생명 등 업권을 가리지 않고 참석자들이 인가 절차와 수탁법인 운영 기준을 물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부의 구체적인 구상이 잇따라 나왔다.
노동부는 기금형 수탁법인의 인가 문턱을 높게 잡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난립을 막고 규모의 경제를 위해 생각보다 소수의 기금이 인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제시한 금융기관 개방형 수탁법인의 최소자본금 120억원에 대해서도 "최소 요건일 뿐 실제 심의에서는 자본금을 얼마나 충분히 마련했는지가 상당 부분 반영된다"고 덧붙였다.
표준형 DC는 퇴직연금사업자가 표준 규약을 미리 승인받아 두고 여러 사업장을 한꺼번에 가입시키는 확정기여형 제도를 말한다. 노동부는 그동안 사업자가 낸 운영 계획서만 검토해 우선 승인을 내주는 간이 심사를 해 왔다. 하지만 이후 계획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곳이 나오자 최근 일부 표준형 DC의 승인을 취소했다.
반면 기금형은 신청 단계부터 계획을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지 엄밀하게 따지겠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그는 인가를 원하는 기관이 사업장의 가입 의지와 가입자 의견 수렴 결과 등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줄 증빙을 함께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인가 일정의 윤곽도 공개했다. 이 관계자는 법 통과 뒤 하위 법령 정비에 6개월가량 걸리는 만큼 예비인가가 빠르면 내년 하반기에 시작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첫 예비인가는 노동부가 정한 공고 기간에 신청을 한꺼번에 받아 함께 심사하지만, 본인가는 사업자마다 인력과 시스템 투자를 마치는 대로 따로 받는다는 구상이다. 이 때문에 준비가 빠른 곳이 먼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대신 노동부는 예비인가를 받고 나서 일정 기간 안에 본인가를 받지 못하면 이를 취소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가 신청을 받은 뒤 인가나 불승인을 결정해야 하는 처리 기한도 둘 계획이다.
계약형은 기본값 불가…수탁법인 설립 금융지주엔 규제 완화
노동부는 이날 '기금형 디폴트'의 적용 범위도 제시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근로자대표 동의를 거치면 기금형을 기본값으로 둘 수 있지만, 계약형을 기본값으로 설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여기서 기본값은 운용 상품이 아니라 퇴직연금 제도 자체에 관한 개념이다. 사업장이 계약형과 기금형을 함께 둘 때 기금형을 기본 제도로 정한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DC를 고를 수 있는 가입자가 따로 선택하지 않으면 기금형 DC에 우선 가입되는 구조라고 소개했다.
이 때문에 기금형 디폴트는 기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과 적용 단계부터 다르다. 디폴트옵션은 계약형 DC·IRP 가입자가 운용 상품을 고르지 않을 때 미리 정해 둔 상품으로 적립금을 굴려주는 장치다. 반면 기금형 디폴트는 가입자가 어느 제도에 들지를 정하는 단계에서 작동한다.
이 관계자는 "계약형 사업자 입장에서는 기금형 디폴트가 상당히 위협적인 요인으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 도입하는 기금형을 촉진할 필요가 있어 디폴트 제도를 넣었다"며 "수탁자 책임과 그에 따른 인센티브가 충분히 반영된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노동부는 가입자 선택권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계약형과 기금형, 기금형끼리의 이동을 제한 없이 허용하고 최소 가입 기간도 두지 않는다는 구상이다. 이 관계자는 금융시장 충격으로 적립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남은 가입자가 피해를 볼 경우에 대비해 숙려 기간 등 행정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부는 금융그룹의 진입 장벽도 일부 낮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관계자는 금융지주 자회사가 수탁법인을 손자회사로 둘 때 걸리는 금융지주회사법상 제한에 대해 "예외를 둘 수 있는 조문을 넣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설립 초기에는 일정 기간에 한해 장관 승인을 거쳐 모회사 임원 파견과 시스템 활용도 열어줄 예정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견제 장치도 함께 둔다는 입장이다. 금융기관 개방형 수탁법인은 영리 주식회사로 두되, 배당은 제한하고 상장은 막는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수탁법인이 계열사에 업무를 몰아주지 못하도록 계열사 위탁을 일부 묶고, 과도하게 맡기면 충분한 소명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 관계자는 손실이 났을 때 수탁법인이 스스로 잘못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한 규정에 대해서도 "결과가 아니라 절차에 대한 입증 책임 전환"이라며 정해진 절차를 지켰다면 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참여하려면 관련법 고쳐야…결국 국회 병합 심사로
한편 노동부는 국민연금공단의 참여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날도 국회 몫으로 돌렸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정과 전문가 간 이견이 너무 커 국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며 "국민연금이 참여하려면 국민연금법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업계는 이를 이달 발의될 정부 개정안에 국민연금 참여 조항이 빠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는 국민연금 참여의 길을 여는 의원 입법이 이미 나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지난달 7일 국민연금공단 등 공적연금기관의 참여를 허용하되 시장점유율을 법 시행 후 3년간 10%, 5년간 30% 이하로 묶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정부안을 중심으로 기존 의원안을 통합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김영훈 노동부 장관도 지난달 27일 종합 국정감사에서 적정한 선에서 국민연금 참여를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이 때문에 민간 사업자들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병합 심사 과정에서 정부안이 이용우 의원안 등과 합쳐지며 국민연금 참여 조항이 들어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앞의 증권사 관계자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며 "기존 사업자들이 국민연금 참여를 환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초기 설계가 기본값 된다"…금융업권 간 쟁점은 하위 법령으로
노동부는 이날 사업자 간 이해가 엇갈리는 쟁점에는 아직 답을 내놓지 않았다. 실제로 질의응답에서는 2015년 7월부터 금지된 퇴직연금 사업자의 자사 원리금보장상품 편입이 풀리는지 묻는 참석자도 있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방안에서 빠진 사안이라며 "업권 간 이해관계가 많이 갈리는 내용이라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320여 개에 이르는 디폴트옵션 상품을 줄이는 방안도 아직 검토 단계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한 금융사 참석자는 방안이 아직 개략적인 수준인 만큼 사업자와 논의할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법률에는 큰 틀만 담고 세부 내용은 시행령·시행규칙·고시에서 정하면서 사업자 작업반 등을 꾸려 의견을 듣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정안을 이달 중 발의해 12월이나 내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키는 일정으로 여당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초기 설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 제도가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그게 기본값이 되고, 나중에 조정하려면 업권 간 이해관계가 갈려 어려워진다"며 "정말 안 되는 부분은 미리 얘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결국 기금형의 최종 모습은 오는 6일 CEO 간담회와 하위 법령 논의에서 사업자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간담회 당일 참석 대표이사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건의 사항을 받을 계획이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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