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윤 회장은 평생 기업을 일구며 이순신을 연구한 끝에 “그는 한반도 유사 이래 최고의 경영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십 년 공부 끝 이순신학 탄생
윤동한 회장이 이순신에 깊이 천착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990년 3명의 직원과 함께 한국콜마를 창업한 뒤 대기업집단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겪는 수많은 난관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직면했던 상황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원이 부족할 때 어떻게 조직을 재건할 것인가. 구성원들의 불안을 어떻게 안정시키고, 장기적으로 생존할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역사에서 찾기 위해 윤 회장은 30년 가까이 이순신을 연구해왔다. 2017년에는 비영리법인 서울여해재단(여해는 이순신의 호 ‘汝諧’에서 따옴)을 설립했고, 2021년에는 대구가톨릭대학교와 함께 국내 최초로 이순신학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2024년, 그는 이 학과에서 이순신학 1호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 논문은 ‘고하도·고금도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이순신의 승리 전략 연구’로, 지리·병참·정보를 경영학적으로 분석한 작품이다.
13척 배에서 배우는 경영
윤동한 회장이 재해석한 이순신은 기존 통념과 다르다. ‘전술의 천재’, ‘불굴의 애국자’를 넘어 그는 극도의 제약 조건 속에서 조직을 운영하고 자원을 창출한 실질적인 경영자로 주목받는다. 전함이 없을 때 자력으로 배를 건조하고, 국가 지원이 끊겼을 때 현지에서 군량과 무기를 조달했으며, 모든 계급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점이 핵심이다.
그가 정리한 이순신학의 다섯 가지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이미지 확대보기첫째,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경영
“모든 일은 준비하는 자가 승리한다.” 이순신이 전함 설계와 무기 개발에 몰두한 것은 철저한 준비 정신의 결과였다. 윤 회장은 이 정신을 기업의 연구개발(R&D) 중시로 계승했다. 한국콜마는 매출의 5% 이상을 지속적으로 R&D에 투자하고, 전체 임직원의 약 30%를 연구인력으로 배치한다. ODM(제조자개발생산) 사업으로의 과감한 전환도 이러한 준비 경영의 산물이다.
둘째, 경청(傾聽)의 리더십
이순신은 작전회의에서 말단 병사와 백성의 의견까지 경청했다. 윤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조직은 내부에서 무너진다”는 그의 통찰을 기업 문화로 만들었다. 그는 재직 임직원은 물론, 퇴직자까지 찾아가 면담하며 회사 제도와 문화의 문제를 듣는다. 이러한 경청 경영은 한국콜마의 수평적 소통 문화와 빠른 의사결정의 기반이 됐다.
셋째, 정보와 현장 중심의 ‘선승구전(先勝求戰)’
이순신은 전투에 나서기 전에 지형, 해류, 적의 심리까지 철저히 분석했다. 특히 고하도와 고금도를 수군 재건 기지로 선택한 것은 지리적·수리적 정보를 극대화한 결정이었다. 윤 회장의 박사 논문도 바로 이 부분에 집중했다. 그는 이를 경영에 적용해 “정보와 현장 없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중요한 투자나 사업 전환을 결정하기 전 반드시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현장 검증을 거치는 문화가 그것이다.
넷째, 자립과 병참(兵站) 경영
조정의 지원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이순신은 지역과 협력해 군수물자를 자체 조달하고 둔전을 개발했다. 윤 회장은 이를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 경영”으로 해석한다. 한국콜마가 핵심 기술과 공급망을 수직 계열화하고,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자체 역량을 강화한 전략이 바로 이 원리에서 나왔다. 그는 “나라(외부)에만 의존하면 결국 무너진다”는 이순신의 교훈을 기업의 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정화로 실천해왔다.
다섯째, 우보천리(牛步千里)와 장기적 관점
이순신은 빠른 승리보다 지속 가능한 승리를 추구했다. 한 번의 해전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장기전을 준비한 태도는 ‘소처럼 천천히 가되 결코 멈추지 않는’ 우보천리 정신으로 이어진다. 윤 회장은 위기 상황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근본을 다지는 경영을 강조하며, “꿈을 가지고 하루도 쉬지 않고 나아가라”고 후배 기업인들에게 당부한다.
이순신 학교, ‘작은 영웅’ 양성
윤동한 회장은 자신이 터득한 이순신학을 개인의 것으로만 두지 않았다. 2017년 서울여해재단을 통해 이순신 학교를 개설, 중소·중견기업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지속하고 있다. 그가 교육생들을 부르는 이름은 ‘작은 영웅’이다.
“모든 조직에는 이순신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자신의 현장에서 유비무환을 실천하고, 경청하며,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작은 영웅이다.”
이순신 학교는 역사 강의에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이 각자의 업무 현장에 이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실천 중심 프로그램이다. 대구가톨릭대 이순신학과 신설 역시 같은 철학에서 비롯됐다. 윤 회장은 이순신학을 사학·경영학·리더십·병참학이 융합된 실용 학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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