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는 더 이상 유튜브에서 춤을 추는 연구 로봇이 아니었다. 완전히 전동화된 설계로 재구성된 신형 모델은 자동차 부품 조립, 부품 정렬 같은 실제 산업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현대차그룹이 조지아 메타플랜트에서 이미 배포를 시작했다는 발표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상용화가 임박했음을 의미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증권가와 시장의 평가는 한 목소리가 되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이제 '진짜' 비즈니스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기업가치, 12조부터 128조까지 평가 스펙트럼 넓어
현재 시장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매우 흥미롭다. 평가기관마다 결론이 극명하게 갈린다. KB증권은 2035년 휴머노이드 시장이 연간 960만 대로 성장할 것이라 가정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그중 15.6%(150만 대)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기업가치는 128조 원에 달했다. 한화투자증권은 미국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사업 가치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993억 달러(약 146조 원)로 평가했다. NH투자증권은 제품별 예상 매출에 주가매출액비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53조 3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증권가 일반의 합의점은 대략 30조~40조 원대에 있다. 다만 일부 분석가들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50조 원을 초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CES 2026 이전까지만 해도 4조~10조 원으로 평가받던 기업의 가치가 불과 2주일 만에 10배 이상 뛰었다. 양산 불확실성이라는 가장 큰 약점이 현대차그룹의 명확한 로드맵으로 해소된 결과다.
3조 원대 누적 손실 … 외부 자본 유치 필수
보스턴다이내믹스의 IPO가 단순한 기업 가치 제고를 넘어 그룹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 이유는 까다로운 재무 현실에 있다. 2022년부터 2025년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390억 7000만 원에 그쳤지만, 누적 순손실은 1조 3846억 원에 달했다. 연구개발 투자를 계속하면서도 본격적인 수익 창출은 아직 먼 미래였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장재훈 부회장 직속으로 사업기획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나스닥 상장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투자·인수합병 전문가와 거버넌스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 팀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상장은 공시 의무와 주가에 민감한 사안인 만큼 공식 발표 전까지는 보수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기업가치 평가와 시기 조율이 상당히 진척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장재훈 부회장 직속 TF팀 구성 나스닥 상장 작업
2020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당시 정의선 회장은 개인 자금 2400억 원을 투자해 지분 21.9%를 직접 확보했다. 현재 그 지분이 기업가치 30조~40조 원 기준으로 6조~9조 원의 가치를 갖는다. 최고가 평가인 128조 원이 적용된다면 그 가치는 28조 원에 달한다. 이는 정의선 회장이 지난 5년간 가장 획기적인 자산 증식을 이루어낸 것이다.
상속 문제도 이 그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상속세율 60%가 적용되어 약 7조 원의 세금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IPO를 통해 확보한 현금은 이 상속세를 납부하는 동시에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다. 나아가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11.25% 지분도 추가 자산 가치 상승의 수혜를 받을 예정이다. 현대글로비스의 보유 지분 가치는 보수적으로 접근해도 3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나스닥 선택,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한국 증시가 아닌 미국 나스닥을 상장지로 선택한 이유는 세 가지 전략이 합쳐진 결과다.
첫째는 미국 기업으로서의 재평가다. 법리적으로는 미국 법인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국 자본의 지분이 88%를 초과하면서 '한국계 기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나스닥 상장을 통해 지분 구조가 자연스럽게 분산되면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명실상부한 '미국 기술 기업'으로 재평가받을 수 있다. 이는 미국 정부 조달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자국 우선주의 규제를 우회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밸류에이션의 차이다. 코스피에서는 현재의 실적과 이익(PER)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적자 구조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합리적인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반면 나스닥은 미래 성장 잠재력과 매출 대비 주가(PSR)를 핵심 지표로 삼는다. 이 같은 평가 방식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40조 원 이상의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셋째는 인재 확보의 우위성이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환금성 높은 미국 상장 주식의 스톡옵션이다. 테슬라 같은 글로벌 빅테크와의 인재 영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미국 나스닥 상장이 강력한 인센티브로 기능한다. 실제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구글 딥마인드와의 협력을 발표했으며, 향후 세계 최고의 로보틱스 엔지니어들을 확보해야 한다.
2028년 양산까지, 서둘러야 하는 이유
현대차그룹의 IPO 추진 일정에는 나름의 시간 압박이 존재한다. 2021년 소프트뱅크와 맺은 인수 계약에 포함된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조건을 고려하면, 올해는 상장 절차를 구체화해야 하는 적기다. 또한 현재 로보틱스 산업이 고평가받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시장 분석가들은 2028년 3만 대 규모의 양산 체제 구축이라는 목표 사이에 IPO 일정을 배치할 가능성을 높게 본다. 2026년 상반기 또는 2027년 중 상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우세하다. 아틀라스의 초기 배포 성공, 구글 딥마인드와의 협력 확대, 현대모비스를 통한 액츄에이터 국산화 등 추가적인 성과가 쌓일수록 기업가치는 밴드 상단에 가까워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정해진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를 전형적인 상장 전 보안 유지 절차로 해석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 본인도 CES 2026에서 "현재로서는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신중한 표현을 썼다.
현대차그룹 전체를 끌어올린 기대감
흥미롭게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IPO 기대감은 이미 현대차그룹 전체의 주가에 반영되었다. 2026년 연초 이후 현대차는 23.8% 상승해 시가총액 14조4000억 원이 증가했다. 기아는 6.2%, 현대모비스는 5.6%, 현대글로비스는 34.8%가 올랐다. iM증권 분석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를 30조 원으로 가정할 경우 각 회사의 주가 상승분은 지분 가치의 56~172%에 달한다. 시장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성공이 단순한 로봇 사업을 넘어 현대차그룹 전체의 미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생산성 혁신 효과가 현대차의 영업이익을 2030년 11조7000억 원에서 2036년 24조6000억 원으로 2배 이상 확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단순한 로봇 팔 하나의 성능을 넘어 제조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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