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의 성장 스토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설이다. 패션 콘텐츠를 다루는 소규모 미디어에서 출발한 회사가 2024년 기준 연간 거래액 4조5000억원, 매출 1조2427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최대 패션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2024년은 창사 이래 첫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기념비적인 해였다.
무신사가 다른 패션 플랫폼과 차별화된 점은 단순한 중개 플랫폼이 아닌 '팬덤 기반 커뮤니티'라는 독특한 접근 방식이었다. 초기 남성 중심의 패션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점차 커머스 기능을 추가하며 진화했고, 29CM 인수를 통해 여성 고객층까지 확대했다. 여기에 자체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의 성공적인 론칭과 오프라인 매장 진출, 편의점(GS25) 등 새로운 유통 채널과의 협업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확장해왔다.

글로벌 시장을 향한 야심찬 도전
박준모 무신사 대표는 6월 1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글로벌 파트너스 데이'에서 회사의 글로벌 비전을 명확히 제시했다. "K팝, K드라마, K무비 등 K컬처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K패션은 아직 해외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공 사례가 없다"며 "무신사가 K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위한 장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무신사의 글로벌 전략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첫째는 '글로벌 스토어' 중심의 플랫폼 사업이다. 2022년 하반기 런칭한 글로벌 스토어는 현재 일본, 호주, 캐나다,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완, 태국, 미국, 베트남 등 13개 전략 국가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2024년 3분기에는 분기 흑자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수익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둘째는 브랜드 총판 사업이다. K브랜드는 상품만 준비하고 나머지는 무신사가 모든 것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풀필먼트(통합물류) 서비스, 국내·글로벌 스토어 입점 연동, 국내-글로벌 애플리케이션 통합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2022년 출범한 글로벌 스토어의 거래액이 연평균 260% 증가하고,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300만명에 이르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천여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현재의 규모는 향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IPO 본격화, '유니콘' 기업의 상장 준비
박준모 대표는 이날 미디어 간담회에서 IPO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다. "상장에 대한 준비는 계획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며 "IPO를 글로벌 확장의 중요한 투자 방식 중 하나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IPO는 사업의 중요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며 "상장 타이밍도 중요하다. 원하는 수준의 자금 조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 등 주관사 선정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상장 가능성도 열어뒀다. 박 대표는 "상장 거래소를 어디에 둘지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면서도 "두 가지 옵션 모두 장단점이 있다. 어느 하나가 확실히 더 나은 옵션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렵다"고 언급했다.
무신사는 2023년 글로벌 사모펀드 KKR과 웰링턴 매니지먼트로부터 200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며 3조원 중반 대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이후 시장에서는 무신사의 기업가치를 최대 5조원 수준까지 평가하며 상장 기대감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본격적인 IPO 준비 절차에 돌입하면서 상장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2025년 임기를 시작으로 사외이사를 새롭게 선임하며 이사회 구성까지 정비를 마쳤다는 보도도 나왔다.
무신사 스탠다드, '한국형 유니클로' 전략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조만호 대표는 상장을 앞두고 무신사 스탠다드를 '한국형 유니클로'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니클로를 장기적으로 대체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2023년 말 기준 5개에 불과하던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은 현재 25개까지 늘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진행한 슈퍼세일 기간의 매출은 전년 동기간과 비교해 약 16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는 성과도 보였다.
무신사의 매출 원가율은 최근 들어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무신사 스탠다드를 중심으로 제품 매출이 늘어나면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 영향이다. 무신사의 별도기준 매출 원가율은 2022년 34.8%에서 2023년 39.3%까지 치솟았으나 2024년 35.5%, 2025년 1분기 32.8%까지 내려왔다.
자회사 부진으로 수익성 악화
하지만 무신사의 글로벌 도약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가장 큰 우려는 수익성 악화였다. 외형 성장은 지속되고 있지만, 자회사들의 부진한 실적과 고정비 증가, 오프라인·글로벌 투자 확대로 인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었다. 2023년에는 매출이 40.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13억원 흑자에서 86억원 손실로 적자전환했다. 다행히 2024년에는 영업이익 1,028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무신사는 자회사 실적 부진 해결을 위해 구조조정에도 나섰다.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을 운영하는 자회사 에스엘디티(SLDT)는 2021년 158억원, 2022년 427억원, 2023년 28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무신사는 솔드아웃 전체 임직원의 30% 안팎 수준의 인원 감축을 결정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시장 지배력 논란이다. 무신사는 입점 브랜드에 대한 높은 수수료(최대 30%), 타 플랫폼 입점 제한, 과도한 할인율 요구 등으로 '갑질' 논란에 휘말려 있다. 지난해 8월 무신사는 일부 입점 업체를 대상으로 다른 플랫폼에 진출할 수 없도록 거래를 막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문제는 현재 공정위에서 조사 중이다.
타 플랫폼 입점(멀티호밍) 받은 가운데 무신사 상품기획자(MD)들의 과도한 할인율 부추기기,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 최고 수준인 최대 30%의 수수료 등 각종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2024년 10월에는 면접 과정에서의 갑질 논란도 불거졌다. 한 익명의 구직자가 자신의 SNS에 무신사 면접관으로부터 부적절한 훈계를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내용은 각종 커뮤니티로 확산됐다.
또한 2025년 초에는 일부 브랜드들이 덕다운·캐시미어 제품의 충전재 혼용률을 허위 기재한 논란이 불거져 무신사가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8개 브랜드에 대해 제재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의 생존 전략
국내외 패션 플랫폼 및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패션 플랫폼들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무신사만이 독주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강력한 현지 플랫폼들이 존재한다. 일본의 조조타운, 미국의 아마존 등이 대표적이다.
2024년 연결회계 기준 무신사의 부채총계는 1조4903억원, 자본총계는 7703억원으로, 부채비율은 194%다. 통상 재무건전성 기준인 200%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친다는 재무적 부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컬처의 글로벌 확산은 무신사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0~30대 해외 고객을 중심으로 K패션에 대한 높은 관심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형 백화점, 쇼핑몰 등의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바잉을 염두에 두고 시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서비스 고도화 위한 인재 영입 확대”
무신사의 글로벌 도전은 이제 시작 단계다. 무신사 관계자는 "올해는 무신사, 29CM, 글로벌 등 주요 플랫폼 서비스의 고도화를 위한 테크 인프라 및 인재 영입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며 "K패션 브랜드들이 해외 시장으로 적극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목적으로"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동종 업계 상장사와 비교해도 무신사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뚜렷하다. 대표적으로 시가총액 약 3조 원 수준의 F&F는 올해 1분기 무신사의 1.7배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시장은 무신사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있다.
무신사가 제시한 ‘2030년 글로벌 거래액 3조원’이라는 목표가 실현될지는 향후 5년간의 현지화 전략, 파트너십 구축, 물류 인프라 확충, 그리고 무엇보다 브랜드와의 상생 관계 구축에 달려 있다. K패션의 글로벌 확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20년간 국내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무신사의 글로벌 도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커뮤니티 기반의 독특한 성장 전략과 자체 브랜드, 오프라인 확장, 글로벌 진출 등 다각화된 사업 모델로 국내 패션 플랫폼 시장을 선도해온 무신사. 이제 그들의 다음 목표는 명확하다. K패션을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인큐베이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익성 개선과 공정한 거래 관행 정착이라는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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