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특히 이번 판결은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가 간접강제금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던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그간 이를 근거로 의무 이행을 거부해온 신 회장의 논리적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다.
ICC 중재판정부는 지난 2024년 12월 신 회장에게 주주간계약에 따라 감정평가인을 선임하고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의무 이행 완료 시까지 하루 20만달러(약 2억7천만원)의 간접강제금을 사모펀드 측에 지급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로 해당 명령의 법적 효력이 인정되면서 신 회장은 보고서 제출 지연시 막대한 강제금 부담을 떠안게 됐다.
서울고등법원은 신 회장 측의 주요 주장도 불인용했다. 2심 재판부는 '평가보고서 제출을 위한 노력을 다했으므로 의무가 소멸했다'는 신 회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고법은 신 회장이 새로운 평가기관을 선임해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고 봤다. 중재 판정의 취지는 결과가 발생할 때까지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도 판시했다.
그간 신 회장은 기존 평가기관인 한영회계법인의 사임 등을 이유로 의무 이행의 현실적 어려움을 주장해왔으나, 법원은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국면 접어든 14년 묵혀온 분쟁
이번 판결의 배경에는 그간 이어져온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의 복잡한 내력이 있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어피니티컨소시엄(어피니티, IMM프라이빗에쿼티, EQT파트너스, 싱가포르투자청)은 지난 2012년 9월 FI(재무적 투자자)로 참여, 교보생명 지분 24%(492만주)를 1조2천54억원(주당 24만5천원)에 매수했다.
당시 체결한 계약서에는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가 무산될 경우 주식의 공정시장가치(FMV)와 매입가격 중 큰 금액으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교보생명의 상장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투자자들은 이 조항을 발동했다.
흥미롭게도 신 회장은 어피니티 분쟁이 진행 중인 와중에도 다른 투자자와의 분쟁을 먼저 정리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또 다른 재무적 투자자(FI)인 어펄마캐피탈의 교보생명 지분을 당초 알려진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펄마는 2007년 2천억원에 교보생명 주식을 주당 18만5천원에 매수하고, 2012년 말까지 교보생명이 상장하지 못할 시 해당 주식을 신 회장에게 되팔 수 있다는 내용의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2018년 11월 신 회장을 상대로 주당 39만8천원에 풋옵션을 행사했으나 신 회장 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국제중재판정부(ICC)에 중재를 신청해 양측 간 소송전이 지금까지 지속돼 왔다.
1조원대 자금 조달의 딜레마
어피니티와의 분쟁 해결을 위해 신 회장이 준비한 자금 규모도 주목된다. 신 회장 측은 이번 판정에 대비해 약 1조원대의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는 신 회장이 주장한 주당 19만원 가치를 적용한 것이고 외부에서 받은 가격이 더 높아질수록 추가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대규모 자금 조달 과정에서 신 회장 중심의 교보생명 경영 구도가 변화할 가능성도 지적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신 회장은 주식 매매 대금 자체뿐만 아니라 이자 비용을 낮추기 위해선 어피니티 풋옵션 가격을 최대한 낮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보생명은 경영 구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의 분쟁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불확실성은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23년 교보생명은 513억원의 배당을 한데 그쳤으며, 이 가운데 신 회장에게 돌아간 금액은 약 170억원에 불과했다.
적극적 협상 통한 빠른 합의 가능성도
한편 신창재 회장은 SBI그룹과 협력해 올해 10월까지 SBI저축은행 지분 인수를 추진 중이며, 손해보험사 인수도 계획 중이다. 2005년부터 추진해온 금융지주사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나, IMM PE·EQT와의 분쟁 해결이 선결과제로 꼽힌다.
올해가 남은 FI와의 최종 정산, 그리고 교보생명 IPO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서울고법 판결로 신 회장의 시간 압박이 증가했지만, 동시에 적극적인 협상을 통한 빠른 합의 가능성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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