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오랫동안 돈을 빌리고 갚는 관계였다면 거래를 처음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좌로 돌려준 돈 외에 업무대금에서 공제하거나 당사자 사이의 정산으로 처리한 금액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소인이 주장하는 미변제액과 실제 남은 채무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량 운영비 등을 둘러싸고 사기 고소가 제기된 한 사건도 그랬다. 고소인은 피의자에게 여러 차례 돈을 지급했으나 상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자금이 당초 설명과 다르게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피의자 측은 직접 송금해 갚은 돈뿐 아니라 운송업무의 대가에서 매달 공제된 금액도 변제로 반영해야 한다고 다퉜다.
이처럼 상환 방식이 여러 가지라면 계좌이체 내역만으로 변제액을 계산하기 어렵다. 업무대금으로 받아야 할 금액이 얼마였는지, 그중 얼마를 채무 상환에 쓰기로 했는지, 실제 지급액은 얼마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다만 지급받지 못한 업무대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금액 전부가 변제됐다고 볼 수는 없다. 공제에 관한 합의와 정산 내역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찰은 이 사건에서 일부 차용금이 반환되지 않은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오랜 기간 거래하면서 차용과 변제를 반복했고,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에서도 상당한 변제가 확인된다는 점을 살폈다. 그러한 거래가 계속되는 동안 고소인이 추가로 돈을 지급한 사정도 함께 검토했다. 경찰은 각 차용 당시 피의자에게 편취 의도가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이 판단을 '오랫동안 거래했거나 일부라도 갚으면 사기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반복된 거래 중에도 특정 시점부터 재정 상태가 달라지거나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속였을 수 있다. 따라서 어느 금전 지급이 고소 대상인지부터 특정하고, 각각의 차용 당시 어떤 설명과 약정이 있었는지 따져야 한다.
돈의 사용처에 관한 다툼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에서는 자금 지급 이후의 사용이나 약속 불이행에 관한 사정만으로 처음부터 편취 의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돈을 빌릴 때부터 용도를 거짓으로 설명했고, 실제 용도를 알았다면 상대방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관계라면 사기죄가 문제 될 수 있다. 나중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와 돈을 받기 위해 처음부터 거짓말한 경우는 구분해야 한다.
대법원 역시 차용 당시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이후 변제하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결국 상환이 중단된 시점의 사정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돈을 빌릴 무렵의 재산과 수입, 상대방에게 설명한 내용, 거래가 이어진 경위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불송치 결정이 남은 채무까지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형사사건에서 사기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와 민사상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두 문제를 구분한 뒤, 실제 거래 자료에 맞춰 인정할 부분과 다툴 부분을 정리해야 한다.
글 : 법률사무소 제우 강병권 변호사
[글로벌에픽 김동원 CP / epic@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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