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이처럼 주요 시중은행에서 고객정보 유출이 잇따르면서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5대 시중은행장들의 연임 구도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현장조사에 착수했고,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는 5대 은행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부르겠다는 뜻을 공개했다. 지난 4일에는 이재명 대통령까지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 때문에 4대 금융지주가 3분기까지 17조원이 넘는 누적 순이익으로 역대 최대 실적이 유력한데도, '실적이 곧 연임'이라는 그간의 공식이 이번 승계 심사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대 금융 3분기 순익 5조7천783억 추정…실적만 보면 연임에 무게
실적만 놓고 보면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은행장들의 연임에는 무게가 실린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6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올해 3분기 당기순이익 시장 전망치(컨센서스)는 5조7천783억 원이다. 전년 동기보다 4.4% 늘어난 규모로, 3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반영한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17조3천03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15조9천932억원)보다 8.2% 증가할 전망이다.
이 같은 이익을 떠받친 것은 핵심 계열사인 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2조4천585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은행권 1위에 오르며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았다. 하나은행은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KB국민은행도 전년 동기보다 1.7% 늘어난 순이익을 기록했다.
반면 우리은행의 상반기 순이익은 1조3천730억원으로 11.9% 줄었고, NH농협은행 역시 상반기 실적이 뒷걸음질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상반기와 3분기 실적은 연임 심사에 반영되는 사실상 마지막 성적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승계 절차가 막 시작된 시점에 정보유출 사고가 불거지면서, 실적 중심의 연임 구도에 변수가 생긴 모양새다.
신한 등 금융사 9곳 유출…李대통령 조사 지시에 금융위 엄정 책임 경고
사고는 신한은행에서 시작됐다. 외부 공격자가 대출모집인 전용 모바일 조회서비스의 인증 절차를 우회해 고객번호를 확보한 뒤, 이를 다른 간편조회 서비스에 반복 대입해 정보를 빼낸 것으로 파악됐다. 유출 규모는 2만5천729명으로, 이름·연소득·대출 산출한도 등과 함께 주민등록번호 66건도 포함됐다.
이어 이달 2일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고객 119명, 89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공개했다. 세 은행 모두 인터넷·모바일뱅킹 같은 핵심 거래망이 아닌 업무용·영업지원 시스템이 뚫렸고,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AI를 활용한 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금감원은 신한은행의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위규 사항이 확인되면 정식 검사로 전환할 방침이다. 조사에서는 초기 대응의 적절성도 들여다볼 것으로 관측된다. 국회에 제출된 신한은행 침해사고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은 비정상적인 접근이 시작된 지 15시간여 만에 이를 인지했고 금감원 신고는 그다음 날에야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의 압박도 커지고 있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5대 시중은행장을 국감 증인으로 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오는 19일 금감원 국감이나 22일 종합감사에서 출석을 요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사태는 정부 차원의 대응으로 확대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금융기관 등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현황을 보고받은 뒤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했다.
피해가 2금융권까지 확산된 점도 당국의 위기감을 키웠다. 지난 5일 기준 정보 유출이 확인된 곳은 은행 4곳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체(온투업) 2곳 등 9곳이며, 예가람저축은행에서만 고객 약 4만명의 정보가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전 금융권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이미 공유된 공격정보가 있는데도 점검을 소홀히 해 유사 사고가 나면 관련 법령에 따라 엄정히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은행별 승계 셈법 제각각…KB 새 회장 체제·신한 3연임 도전·하나 연임 드물어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행장별 연임 구도에 미칠 파장이 각 그룹의 인사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분석한다.
KB국민은행은 지주 회장 교체가 인선 구도에 먼저 영향을 미치고 있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달 11일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끈 양종희 회장 대신 '세대교체'를 내걸고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전 국민은행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이 후보가 오는 11월 21일 임기를 시작하면 연말 계열사 인사는 새 회장 체제의 첫 인사가 되는 만큼, 계열사 CEO 교체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환주 행장으로서는 이런 인적 쇄신 기류에 정보유출 사고까지 겹친 셈이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2023년 2월 취임 후 2024년 말 연임해, 이번에 다시 선임되면 2006년 통합 신한은행 출범 이후 첫 '3연임' 행장이 된다. 장기 재임에 대한 부담에도 상반기 은행권 1위 실적과 리딩뱅크 탈환은 연임 명분으로 꼽혀 왔다.
문제는 은행권에서 유출 규모가 가장 큰 곳이 신한은행이라는 점이다. 2만5천700여 명으로 KB국민·하나은행의 200배를 웃돈다. 지난해 말 신한카드 가맹점주 정보유출에 이어 그룹 내 사고가 반복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당국의 제재 수위가 연임 여부를 가를 수 있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은 지난해 1월 취임해 첫 2년 임기를 마친다. 통합 하나은행 출범 이후 연임에 성공한 행장은 함영주 현 하나금융 회장이 유일해, 역대 최대 실적에도 연임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여기에 정보유출 사고까지 더해지면서 인선 불확실성은 한층 커졌다는 진단이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은 같은 시기 공격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고객정보 유출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진완 행장은 상반기 순이익 감소가, 강태영 행장은 농협은행 연임 사례가 이대훈 전 행장뿐이라는 점이 각각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사고 책임 심사 여건 마련…신한·하나·우리 임추위 확대·책무구조도 시행
연말 승계 심사에서 이번 사고의 내부통제 책임이 실제로 다뤄질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권한이 커진 데다, 책무구조도로 임원별 책임 소재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임추위 권한 확대는 이찬진 금감원장의 지적에서 비롯됐다. 이 원장이 지난달 15일 자회사 CEO 승계절차의 미흡함을 지적하자, 각 금융지주는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잇따라 넓혔다.
신한금융은 은행 임추위에 후보 추천권을 새로 부여했고, 하나금융은 최종 후보 평가에 은행 임추위원장이 참석해 의견을 내도록 했다. 우리금융은 은행 임추위에 외부 전문기관이 참여하는 경영성과 점검 절차를 신설했다.
최종 후보 추천은 여전히 지주가 주도하지만, 은행 단계의 검증이 늘어난 만큼 사고 책임이 심사에서 거론될 여지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개정 지배구조법에 따라 도입된 책무구조도는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사전에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 조사에서는 정보보호 관리 책무가 어느 임원에게 배정됐고 실제로 이행됐는지도 함께 점검될 공산이 크다.
실적 넘어 보안·내부통제가 잣대로 … 19일 국감·하나 이달 말 숏리스트 맞물려
결국 이번 사태는 '실적이 곧 연임'이라는 그간의 공식을 다시 따져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점검 소홀로 사고가 나면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말 승계 심사에서는 영업 성과와 함께 외부 공격에 대응하는 위기관리 역량과 내부통제 체계가 주요 평가 항목으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 같은 기준이 실제 인선에 적용될지는 이달 국감과 후보 압축 과정에서 가늠될 것으로 점쳐진다. 정무위가 오는 19일 금감원 국감과 22일 종합감사를 앞둔 가운데, 하나금융은 이달 말 최종 후보군을 3명 이내로 압축할 예정이다. 국감에서 제기될 책임론이 후보 압축 단계에 반영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에서는 고객 신뢰가 핵심인 업종 특성상 정보 유출과 국감 소환이라는 악재를 경영 실적만으로 상쇄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이번 연말 인사는 주요 금융그룹이 보안 지배구조와 리더십을 재정비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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