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한국 미술전
삼성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특별전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 개막을 기념하는 갈라 디너를 개최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영국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영국박물관에서 1984년 이후 42년 만에 열리는 규모 높은 한국 미술 특별전이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D.C.와 올해 시카고에 이어 세 번째 순회 개최로, 한국 예술 문화의 2000년 역사를 유럽 관람객들에게 본격 소개하는 자리였다.
행사는 정계·재계·학계·문화계의 주요 인사 240여 명이 참석해 진행됐다. 영국 왕실 앤 공주가 리셉션에 나타나 전시 개막을 축하했고, 정부 측에서는 존 힐리 재무장관, 카니슈카 나라얀 AI 장관을 비롯해 전직 부총리·무역장관·문화부장관 등이 참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글로벌 핵심 파트너사의 최고경영진들이 총출동했다는 것이다.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크리스토프 푸케 CEO, 화학기업 머크의 카이 베크만 CEO, 정밀광학 자이스의 안드레아스 페허 CEO, 반도체 장비사 아이멕의 패트릭 반데나멜레 CEO 등 삼성전자와 반도체 공급망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기업들의 리더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삼성이 미래 반도체와 AI 분야에서 협력해야 할 핵심 파트너들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이재용 회장은 갈라 디너 인사말에서 삼성가의 문화유산 보존 정신을 강조했다. 이병철 창업회장부터 이건희 선대회장, 그리고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까지 이어진 예술과 문화의 가치 추구를 설명한 것이다.
"저희 가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예술과 문화는 보존하고 함께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는 그의 발언은 단순한 미술 애호를 넘어, 그룹의 장기적 가치관을 대외에 알리는 메시지였다. 이는 글로벌 파트너들에게 삼성이 단기 이익이 아닌 지속성 있는 관계와 신뢰를 추구하는 기업임을 나타내는 신호로 작동했다.
이 회장은 또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3명에게 감사를 표하고, 지난 7월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한 앤 공주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한국과 영국의 140여 년 역사적 인연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 제스처를 넘어 양국 관계의 깊이를 상징하는 부분이다.
글로벌 경영 생태계 재편의 신호
이 행사는 삼성이 불확실성 커진 글로벌 경영 환경에 대응하는 전략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 AI 기술 경쟁,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속에서 삼성이 핵심 파트너사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미래 협력 기반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문화 행사라는 공식적 틀 속에서 경영진들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고 상호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셈이다. 영국박물관과 조지 오스본 이사회 의장의 "이건희 선대회장과 가족들의 헌신은 인류 공통의 과거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나침반이 될 것"이라는 화답도, 삼성의 진의를 명확히 읽은 신호로 해석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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