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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삶은 단어와 문장의 언어학이다 -모순(矛盾). ​

2023-05-12 10:50:00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일컫는 고사성어가 단어화 됐다.
알다시피 "창(矛)과 방패(盾)를 파는 사람이 '이 창은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있고 이 방패는 어떤 날카로운 것도 막아낼 수 있다'라고 말하자 '그럼 그 창으로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물음에 답을 하지 못했다"는 한비자에 나오는 일화에서 유래한 단어다.​

하지만 한비자에 나오는 일화를 논리학으로 보면, 모순(contradiction)의 사례가 아니고 역설(paradox)의 사례다. 패러독스는 "자기모순적이거나 예상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주장"을 말한다. 역설의 사례를 들어 모순을 설명하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모순을 다시 들여다보자.
'무엇이든지 뚫을 수 있는 창'이 있다고 홍보하고 1년쯤 지나 '무엇이든지 막을 수 있는 방패'가 있음을 홍보한다면 이 두 사안은 각각 참이 될 수 있다. 모순이 아니다.
1년 사이에 기술이 발달하여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만들어졌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모순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지만 시차를 두고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양자역학에서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임을 증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관찰자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빛은 입자가 되어 위치 좌표를 갖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아침, 단어 하나를 가지고 다소 어려운듯한 접근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단어 하나하나의 용례가 엄중함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감정을 만들고 의식을 만들고 인간 존재를 만든다.
나아가 삶은 언어학이다. 호모사피엔스의 본질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단어 하나하나마다 반드시 어원이 있다. 어떻게, 왜 사용되어 그러한 개념을 갖게 되었는지 정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명확한 의사전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가 어떤 뜻과 개념으로 한번 각인되면 의미를 바꾸지 못한다. 그 단어는 그 뜻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어의 뜻 자체를 리셋해서 입력해야 한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항상 모든 일에는 처음이 중요하다.​

어떤 단어를 배우고 익혔는지, 어떤 문장을 보고 알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심성과 정서가 결정된다. 어려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다.
책은 타인의 경험과 상상을 담아놓은 지식의 보고다. 책을 읽으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간접적으로 무제한에 가까운 사례를 내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유아기일 때라도 부모들이 계속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은 이유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주면 꿈속의 동화책을 밤새 유영할 것이 틀림없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브레인에 기억을 저장하는 창고는 단어사전별(lexicon)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브레인에는 개별 단어가 저장되어 있지, 문장이 저장되어 있지 않다.
문장은 단어의 연결 순서일 뿐이다. 단어를 얼마나 많이 저장하느냐가 학습에 의해 결정되고 그 저장된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만들어 인출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학습에도 순서가 있는 이유다.​

길거리를 가는 유모차 안에 있는 아이조차 태블릿 동영상을 보고 있고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아이들은 휴대폰 동영상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부모들이 문제다.
자기 아이들이 시끄럽게 할 것 같아 타인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조용히 시키고자 영상을 보게 한다는 변명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동영상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면 브레인의 시각중추만 자극할 뿐이다. 옆에 아이와 말을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도 보고 길가의 가로수를 바라보는 종합적 인지발달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다.
당장은 부모가 편하자고 아이들 손에 휴대폰 동영상을 쥐어주지만 멀리 보면 아이의 사고능력을 제한하는 일이 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이걸 모순이라 한다.​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개인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자기 것, 자기 가족, 자기 동료만을 챙기는 in group bias를 넘어서야 한다.
편 가르기가 인간 본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이 경계를 허물지 않는 한 융합 및 통합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
자기 편하고자 임시방편으로 미뤄두고 쌓아두고 버려두면 그것이 나중에 모순의 씨앗이 된다.

발아되기 전에 뿌리째 캐내야 한다. 모순을 없애는 지름길은 배려와 양보다. 절대 손해 안 보는 완고함보다 조금 손해 보고 함께 하는 유연함이 더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굴러가고 여유가 생기고 타인을 챙길 수 있는 온화함도 생긴다. 그 시작이 말과 글에 있다. 예쁘고 아름다운 단어를 골라 말을 하고 표현을 해야 하는 이유다. 예쁜 말, 사랑스러운 표현이 많아지면 사회도 밝아질 수밖에 없다.

[사진=저자 SNS캡처]
[사진=저자 SNS캡처]


'나는 누엇을 모르는조차 모르고 살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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